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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언 15장 4절 묵상 –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 말 한마디가 영혼을 살린다

    잠언 15장 4절 묵상은 온유한 혀가 생명나무임을 보여준다.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요, 패역한 혀는 영을 상하게 한다. 우리의 말은 영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생명을 살리는 말과 성결한 혀를 회복하는 길을 다루는 말씀 묵상.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이나 패역한 혀는 영을 상하게 한다. 
    잠언 15:4 (직역성경)

    잠언 15장 4절 묵상은 우리의 말이 얼마나 깊이 영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은 귀로만 듣지 않는다. 마음과 혼, 그리고 영으로도 듣는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영의 흐름이다. 왜곡된 말은 영을 상하게 하고, 온유한 말은 영을 살린다. 말의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힘이 존재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왜곡된 생각이 영을 상하게 한다. 낙심과 두려움이 밀려올 때, 사탄은 거짓된 말들을 생각 속에 뿌린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영이 약해진다. 이는 참소의 말에 동의한 결과다.

    나 또한 무심코 왜곡된 말로 이웃의 영을 상하게 한 적이 있다. 입술을 통해 생명이 아닌 왜곡이 나간 것을 회개한다. 그리고 내 생각과 혀가 더 이상 대적의 통로가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한다. 내 마음과 입술이 여호와 앞에서 정결하고 거룩하게 되기를 구한다.

    이 묵상을 통해 오늘 다시 선포한다. 나의 혀가 생명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말 한마디로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입술이 되게 하소서.

    주여, 내 생각과 말을 정결케 하소서. 사탄의 참소에 동의하지 않게 하시고, 온유한 혀로 생명의 말을 전하게 하소서. 내 입술을 통하여 영이 살아나게 하소서. 아멘.


    원 본

    잠언 15:4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이나 패역한 혀는 영을 상하게 한다. (직역성경)

    사람의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혼으로도 어떤 말과 생각을 듣는다. 패역한 혀, 곧 뒤틀리고 왜곡된 혀는 영을 상하게 한다. 말은 곧 영의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영의 현실이 말을 통해 전달되어진다. 그러니 사람의 영이 온유한 말을 들을 때 살아나고, 뒤틀리고 왜곡된 말로 인해 상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 특별히 누구로부터 어떤 입의 말을 듣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자신의 영을 상하게 할 때가 나는 있었다. 최근에도 그랬다. 즉 어떤 환경과 상황이 나의 영을 상하게 하였다. 영이 상하여 잠시 낙담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오늘 말씀을 읽으며 깨닫게 되어지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탄이 나의 생각과 귀에 뒤틀린 혀의 말들을 뿌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받은 것이다. 즉 대적이 뿌린 참소의 혀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의한 것이다. 나의 영이 상함을 입었다면 이것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입이 비뚤어지고 왜곡된 말들의 통로가 되어 이웃에게 나갈 때도 있다. 이 시간 나도 모르는 사이 사탄의 참소하는 말에 동의한 것을 회개한다. 그리고 나의 입이 대적의 통로로 사용되어진 것들을 회개한다. 그리고 더욱 깨어 생각과 마음을 여호와 앞에서 성결할 것을 다시 선포하며 기도한다. 아멘.

  •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 항상 잔치하는 삶 – 잠언 15장

    잠언 15장을 묵상하며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라는 말씀의 의미를 풀어봅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말씀과 함께 분노 대신 기쁨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 항상 잔치 같은 하루를 누리는 비밀을 나눕니다.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이나, 패역한 혀는 영을 상하게 한다. 15 가난한 자의 모든 날은 악하나, 마음이 선한 자의 모든 날은 항상 잔치다. 잠언 15:4,(직역성경)

    오만한 자의 교만을 꺾고 회개하도록 이끄는 혀가 있고, 바른 말이라도 심령을 아프게 하는 혀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나를 살리는 말씀만 하셨다. 내게 “너의 거만과 그 큰 거역을 회개하라” 하실 때에도, 나 스스로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말씀하셨고, 과거 지아비를 향해 칼을 품고 있을 그때에도 전혀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범아, 나와 함께 가자” 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셨다. 그분의 입술은 온유한 혀이다. 그분을 닮고 싶을 뿐이다.

    선한 자의 모든 날은 항상 잔치다. 무슨 말이냐면 항상 기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게서 분노가 올라온다면 그 날은 악하다는 것이고, 곧 나는 가난한 자인 것이다.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던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유하다”라고 말씀하셨다. 환경이 어떻든, 재정이 어렵든 상관없다. 알파와 오메가요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실상은 네가 부요하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부유한 자인거다. 정말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면 날마다 기뻐야 하고, 기쁠 수밖에 없고, 고난 가운데 궁핍하다 하여도 부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야말로 전부, 나의 전부 아니신가. 그것이 사실이고 진리다. 그러니 나의 모든 날들은 항상 잔치다.

    며칠 전에 일 때문에 전에 살던 고향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가 40년 살던 집을 보고 참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그 오래되어 낡은 옛날 연립주택. 팔리지도 않는 그 집이 어떻게 눈먼 이단에게 비싸게 팔려서 지금 사는 이곳으로 이사 왔고, 글파를 만났고, 아둘람 같은 이곳에서 자녀 둘을 더 얻지 않았는가. 선하신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신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았으면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 혼자 일해서 6명 대가족을 먹였겠는가. 아니다. 오히려 주님의 도우심과 공급이 얼마나 많았는가.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미래 계획 하나도 세우지 않는데, 그저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주님을 따라가려 할 뿐인데, 뒤돌아보면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이다.

    아내도 내가 찾았는가. 아니, 오히려 나는 삶을 주님께 드렸다. 결혼도 내 삶의 일부 아닌가. 그래서 다 드렸는데, 주님 발걸음 따라가다가 아내도 만난 것이다. 주님께서 내 앞에 데려다 놓으셨는데도 내가 좀 둔해서 그런지 나의 베필감인지도 못알아 보았지. 자녀들도, 학교도, 직장도 다 그렇게 그때그때마다 이끄시고 공급하시는 주님의 손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혈기를 못 이겨 가족들에게 씩씩댔다. 그러니 얼마나 더 회개할 일이 많겠는가. 이제는 나의 삶에서 악한 모든 날들을 다 빼어 버리고, 온전히 잔치날로 채우겠다. 나의 입이 온유한 입술이 되어 갈수록 나의 날들은 더욱 잔칫날에 가까워진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