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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로운 아들과 오만한 자의 차이 – 잠언 13장

    잠언 13장을 중심으로 지혜로운 아들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것과 오만한 자가 꾸지람을 듣지 않는 차이를 묵상합니다. 일상에서의 죄와 순종, 행동으로 증명하는 신앙을 다룹니다.

    잠언 13
    1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오만한 자는 꾸지람을 듣지 않는다. (직역성경).

    훈계를 듣고 바로 회개하여 고치는 것이 듣는 것이다. ‘그렇게 할게요’ 하고 하지 않으면 그것은 듣지 않은 것이다. 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죄를 짓게 하는 습관들, 무엇이 죄인가. 부부가 떨어져 있는 것이 죄이다. 애인과, 혹은 아내와 데이트 하면서 딴 여자에게 눈이 따라가는 것이 죄이다. 해봐라, 곧바로 이글거리는 분노의 질투를 느낄 때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나와 교제하기 원하시는데, 기도해야 하는데, 그것을 알고 느끼면서 유튜브 틀고 뉴스 보고 있으면 그것이 죄이다. 즉,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이 죄이다. 말만 하면서 행동이 따라가지 않아도 그것이 죄인 것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부모님 말씀에 바로 순종하도록 양육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즉각 순종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

    그러니, 내가 아이들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할 말이 있을까. 없지. 나나 잘해야지. 그렇지. 이따금씩, 혼자 뉴스 틀고 있는 것이 주님께 죄송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나 혼자 안 보고, ‘예수님 내 옆에 계세요 같이 봐요’ 한다. 나쁜 걸 보는 게 아니니, 뭐 괜찮을까. 그러다 “이제 꺼라, 그만 봐라” 하시는 것 같은 감동을 받으면 최대한 바로 끄고 잔다. 아니면 기도한다. 이도 저도 아닐 때는 말씀을 읽는다. 말씀을 꼭 밥으로만 먹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간식으로도 먹을 수 있다. 영이 출출할 때 언제든지 말씀을 읽어요.

    뭐 이런 문제들은 괜찮다. 그러나 오만한 자는 어떻게 하는가. 왜 그래야 되요? ‘나는 그렇게 말고 다르게 하고 싶어요. 싫어요, 안 해요’ 하며 부모를 대적한다. 그리고 하지 말라 하는 것은 그렇게 한다. 결국은 손바닥이나 엉덩이에 맴매를 맞게 되는 것이 있다. 인내하며 타이르고 가르치는 것보다, 때로는 따끔한 맴매 몇 대가 더욱 효과적일 때도 있다.

    아이들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오늘 훈계를 받는다. 대부분 나에게서 배운 것들 아닌가. 그러니 어쩌겠나, 나부터 회개하고 끊고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주여, 살려주세요, 아멘.

  • 지혜와 예배로 하루를 채우는 삶 – 잠언 8장

    잠언 8장을 통해 주님의 지혜와 예배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삶의 무게 속에서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법을 배워 보세요.

    잠언 8
    내 입의 모든 말은 의롭고 그것들 안에는 비뚤어짐이나 굽어짐이 없으니 깨달은 자에게는 그것들 모두가 정직하며 지식을 발견한 자들에게는 바르다. 은 말고 내 훈계를 취하고, 정제된 금보다 지식을 취하여라. (직역성경).

    주님의 지혜는 그것을 깨달은 자에게만 꿀 같고 진주 같은 것이다. 그분의 지혜를 듣는 자는 먼저 그분의 훈계를 듣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속도가 빠르다. 오늘 아침,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나를 누르려고 한다. 이때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그 무게의 감정을 내가 받아들이려 하는 자신을 보면 회개하고, 동시에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니 주님 손에 던져버린다. 나의 감정을 주님께 다 쏟아 드린다.

    예배는 매주 몇 번 교회 가서 드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매일, 시간마다, 순간순간 주님을 경험하며 양처럼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양들이라면 모두가 다 그렇게 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은금보다도 지금 이 시간에 주님을 만나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 이처럼 나의 하루를 온전히 예배로 채우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나의 친밀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땅, 즉 내 안에 이루어지도록, 그래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모든 시험에서 주님이 지켜주시도록, 그분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잘 따라가는 것이다. 오늘 일용할 양식은 내 알 바 아니다. 그것은 목자가 주시는 것이다. 나는 그저 오늘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그것 한 가지를 붙들고 순종하면 그만이다. 입을 닫는 것이다. 교만하여 패역한 입(이것을 지혜가 미워한다)을 닫는 것이다. 내 입이 언어를 잃어버릴 때까지 입을 닫는 것이다. 모세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다.

    외국에 사는 나의 가족을 보니 한국말도 어눌하고,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뭐 참 애매하다. 전에 보니 우리 교회 태필린도 잘 못 따라 읽더라. 나의 입도 그렇게 닫혀질 수 있을까. 혀가 어눌하여 패역한 말 자체가 잘 안 나올 때까지 입을 닫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