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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언 30장의 지혜: 매일 필요한 빵과 감사의 삶

    잠언 30장 말씀을 통해 매일 필요한 양식, 감사의 태도, 풍족함 속에서 잊기 쉬운 진정한 만족을 묵상합니다.

    잠언 30
    7-8 두 가지 일을 제가 당신께 요청하니 제가 죽기 전에 제게서 막지 마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게 하시고 빈곤과 부를 제게 주지 마시며 매일 필요한 빵을 저로 먹게 하십시오. (직역성경).

    한 달 먹을 음식이 냉장고에 있다 하여도, 오늘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 오히려 요즘처럼 풍족한 시대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입에 안 맞아서 그게 더 문제인 경우가 많다. 어떤 아이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치면서, 옆에 밥이 있는데도 싱겁다고 안 먹고 있다. 옆에 있는 다른 아이는 똑같은 그 밥을 맛있게 먹고 간식까지 다 먹고는 행복하게 잔다. 나는 입맛이 무뎌서 그런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웬만하면 나는 다 맛있게 먹거든.

    주께서 오늘 필요한 빵을 안 주셨는가. 아니면 만나 말고 고기 하는 건가.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을 오늘 다 갖추어야 하는 건가. 오늘 정직하면 되는 것이다. 빈곤하지도 않고 차고 넘치도록 풍족하지도 않아서 주님을 모른다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 필요한 양식으로 감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매일 필요한 빵이 단지 먹는 것인가. 아니다, 오늘 필요한 모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 주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오늘 주님을 사랑하되 처음 주님을 사랑할 때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다. 고기 아니면 어때, 조금 싱거우면 어때, 배고프면 다 맛있다. 입에 안 맞는 게 아니라 풍족해서 그런 것이다. 아침에 눈만 뜨면 그냥 만나가 지천에 깔려 있으니 그런 거다.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니 감사가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자는 곳이 당연한 건가. 아니다. 내 목숨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숨 쉬는 공기마저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이 모든 것을 날마다 선물로 받는 것이다. 마치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처럼. 주님, 내게도 매일 필요한 빵을 먹게 하십시오. 아멘.

  • 잠언 23의 교훈: 부자가 되려는 유혹보다 지혜와 믿음을 선택하라

    잠언 23장은 부자가 되려는 헛된 욕심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를 따를 것을 강조합니다. 좌절 대신 희망을 붙잡고, 가정과 믿음 안에서 참된 소망을 찾는 삶을 나눕니다.

    잠언 23장
    4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네 총명으로 그런 생각을 그만두어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들을 질투하지 말고 오직 온종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질투하여라. 18 반드시 미래가 있으니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들어라, 내 아들아. 그래서 지혜로워라. (직역 성경)

    듣는 자가 지혜롭다. 일단 들어야 할 것 아닌가. 길가, 돌짝밭이라도 일단 들어야 할 것 아닌가.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도 결국은 그 바위를 깨뜨리기도 한다. 자기 능력이 아니다. 가을의 이슬이 얼어 그 힘으로 돌을 깨는 것이다. 지금 당장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말자. 옥토밭이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 나의 상태가 옥토밭이 아니라면 어쩌겠는가. 그래도 심어야 할 것 아닌가. 일단 심어야 뭐가 되든 되지 않겠는가. 혹시 아는가. 갈라진 틈 사이로 물이 스미고, 추운 겨울을 겪으며 그것이 얼어 바위를 깨뜨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부자가 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조금 더 편안함을 위해 조금 더 많이 벌어보려는 유혹을 버리고 오히려 그 시간에 지혜를 듣자. 가족과 자녀들과 성도들과 시간을 조금 더 함께 보내자. 그것이 더 좋다. 속사람 치유받을 때, 나의 부모에게 그렇게 말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하는 것 같다. 나만 그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질투하여 그들처럼 주님께 다 드리는 것이다. 가정도, 재정도, 미래도, 현실도 다 드리면 내가 붙잡을 게 없다. 가장의 책임감과 그 압박감도 다 사라진다. 가정에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무능해 보이는 자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어쩌겠는가. 다 서로 감내하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그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반드시 미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는다. 길바닥에 나앉을 것 같아도 괜찮다. 절대 그렇게 안 될 거니까. 일을 할 수 없어서 백수여도 괜찮아. 염려하지 마. 절대로 안 굶고, 자식들 안 굶길 거니까. 주님이 도우신다. 그분이 이끌어 가신다. 업어 인도하신다. 일단 주님 손에 다 맡겨 보라. 그럼 알게 된다. 경험하게 되어 있다.

    나의 청소년 아이도 이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고 입히시는지 옆에서 다 봤으니까.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키워 간다. 어떤 사춘기 아이는 자기 동생에게 그런다. “필요한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주님께 다니엘처럼 구해 봐. 다 주셔.” 그 아이의 간증 아닌가. 그 아이는 먹고 싶은 음식들이 따라다닌다. 그냥 잠깐 기도했을 뿐인데, 어디에 가든 자기 원하는 음식이 거기 있다고 그런다. 밤에 너무 더워 못 견디겠으면 꿈속에 목사님께서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주실 때도 있다. 또 어떤 아이는 늘 우산이 따라다녀. 그 아이와 함께 다니면 비 맞을 일 없다.

    주께서 내게 허락하신 나의 미래가 있다. 내 주님이 영원하신데 어찌 나의 희망이 끊어지겠는가. 예수, 나의 참 소망.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