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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의 꿀과 음녀의 꿀, 분별하기 – 잠언 5장

    잠언 5:1-4을 통해 ‘지혜의 꿀’과 ‘음녀의 꿀’을 분별하는 길을 묵상합니다.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열매가 다릅니다. 지혜에 경청하고 명철에 귀를 기울이며,
    예수님이 오늘 나를 인도하심을 느낍니다.

    잠언 5:1-4 (직역)
    내 아들아, 내 지혜에 경청하고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판단력을 유지하고 네 입술의 지식을 지켜라.
    참으로 부도덕한 여자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녀의 혀는 기름보다 매끄러우나 그녀의 마지막은 쑥처럼 쓰고 양날 선 칼처럼 날카롭다.

    지혜의 꿀과 음녀의 꿀

    잠언 5장은 지혜와 음녀의 입술을 대조하며, 겉보기에는 꿀처럼 달지만 결국 쑥처럼 쓰디쓴 결과를 경고합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 경청하고 명철에 귀 기울이는 삶을 요구합니다.

    지혜의 꿀과 음녀의 꿀은 처음엔 구분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 지혜: 생명을 낳습니다.
    • 음녀: 멸망을 낳습니다.

    분별하는 삶과 명철

    나는 매일 잠언을 묵상하며 그날의 ‘네비게이션’을 받습니다.
    아직 가지 않은 길의 지도, 예수님께서 오늘 나를 이끌어 가실 방향입니다.
    때로는 음녀의 속임을 분별하지 못하고 아픔으로 배우기도 하지만,
    현실 속에서 분별력과 명철을 몸소 익혀 갑니다.

    오늘의 네비게이션: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은 병자를 위해 오십니다.
    상처받은 자, 저주 속에서 몸부림치는 자,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자에게 오십니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하는 자리입니다.

    오늘도 나는 그분의 말씀을 네비게이션 삼아 나아갑니다.
    “예수님, 당신이 곧 말씀이시죠. 이제 어떻게 하실래요?”


    원본 묵상 글

    무엇으로 음녀의 속임을 간파하는가. 지혜가 내 혀에 꿀과 같은데, 음녀의 입술도 꿀을 떨어뜨린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열매이다. 열매가 다르다. 그러나 그 처음은 너무도 비슷하여 무엇이 음녀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지혜처럼, 내 혀의 꿀처럼 위장하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경청하라고 한다. 지혜에 경청하라. 명철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단순히 말씀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적으로 깨달으라는 말은 더욱 아니다. 나는 매일 아침 지식으로 공부한 잠언을 묵상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하나도 기록하지 않는다. 매일의 잠언을 읽으면서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붙잡는다. 붙잡고 그 시에 받은 감동들을 적어 나간다. 내가 살아낸 말씀들을 적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한다고 감동으로 받은 것 같은 묵상들을 적는 것이다.

    마치 오늘 가야 할 길의 내비게이션 같은 것이다. 오늘의 출발선이다. 아직 가지 않았다. 그 안내대로 가야 할 매일의 숙재가 있는 것이다. 내가 지혜를 경청하고 명철에 귀를 기울이는 나만의 방법이다. 그럼에도 어떤 것은, 어떤 응답은 음녀에게서 온 것임에도 분별하지 못하고 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라. 그런 것들은 꼭 쓰고 아프다.

    나는 환상 속에서 살지 않는다. 현실을 산다. 양자얽힘이 작용하는 현실에서 산다. 지금의 기범이가 과거의 기범이를 예수님께 안내하듯이, 먼 훗날 예수님 옆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는 기범이가 동일하게 지금의 나를 예수님께서 이끌고 있다. 마치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먼 바울의 환상 속에 펼쳐졌던 미래의 바울이 지금의 자신을 아나니아에게로 이끌고 있는 것 같은 것이다.

    이처럼 나는 현실을 살면서 분별하는 법을 몸소 배우는 것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려면 먼저 상처를 심하게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저주를 누가 끊는가. 먼저 저주 가운데 파묻혀야 할것 아닌가. 어둠을 뚫고 나오려면 먼저 어둠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적이 속여 빼앗아간 많은 것들을 예수님께서 다 되찾게 해주신다고 전에 내게 말씀하셨다. 그러려면 먼저 수도 없이 속아 빼앗겨야 하지 않겠는가. 죽은 자가 부활하는 것이다. 문둥병에 걸려야 고침을 받지. 아파야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겠는가. 의사는 병자를 위해 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나의 상황은, 예수님께서 내게 오셔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죄인이고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약하고 여전히 혼자서는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이끌어 가시려고 매일 주시는 네비게이션들, 수도 없이 쌓여 있다. 예수님, 당신께서 곧 말씀이시죠. 이제 어떻게 하실래요? 미래의 기범아, 지금 나를 응원하고 있지?

  • 잠언 4장 묵상: 훈계를 붙잡고 악인의 길을 피하라

    잠언 4장은 훈계를 붙잡고 놓치지 말라는 지혜의 핵심을 강조한다. 이 말씀은 영적 분별력과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 상기시킨다. 선으로 위장한 악의 올무를 분별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을 묵상한다.

    잠언 4:13-14 ― “훈계를 붙잡아 놓치지 말고 지켜라. 참으로 그것이 네 생명이다. 악인들의 길로 들어가지 말고 악한 자들의 길에서 활보하지 마라.” (직역성경)


    훈계를 붙잡는 이유

    잠언 4장은 훈계, 지혜, 악인의 길을 핵심 주제로 삼는다.
    하나님께 받은 교훈을 붙잡고 지키는 삶이 생명의 길임을 말한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기도와 분별을 통해 선으로 위장한 악을 이겨내야 한다.

    악인의 길을 분별하는 법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 겉으로는 선한 길처럼 보여도 영적 속임이 숨어 있다.
    기도로 묻고 응답을 받는 습관이 분별의 핵심이다.
    훈계를 붙잡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때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적 성장과 훈련의 과정

    아이들이 부모의 보호 아래 있듯, 성도도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다.
    그러나 성장할수록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해야 한다.
    넘어짐과 실수를 통해 훈계를 배우고, 영적 분별력이 자라난다.
    이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군사로 훈련되는 길이다.

    결론

    이 땅의 삶은 하나님의 눈앞에 있는 훈련장이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예수님 도우심을 구하며, 훈계를 붙잡고 악인의 길을 피하라.
    “예수님, 도와주세요. 아멘.”


    묵상 원본: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그것이 일반적인 선한 길과 같아 보일 수도 있다. 선한 자의 발목에 올무를 걸기 위해 교묘하게 위장한다. 영의 세계가 실재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땅에서도 더욱 교묘하게 속임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니 기도로 묻고 응답을 받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훈계를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붙잡았으면 놓치지 말고 지켜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가. 전에 응답을 받았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대적의 전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탄의 올무가 마치 하나님의 응답처럼 오지 않는가.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니 그 바운더리 안에서 행복하게 놀면 된다. 그러나 장성하여 부모의 바운더리(보호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면, 이제는 많은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해야 한다. 적의 공격에 더 노출되는 것이다. 실수하여 넘어지고 올무에 걸린다.

    그렇게 훈계를 배운다. 왜 이런 상황들이 허락되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뭐가 달라졌는지 등등 배워가며 훈계를 받아 전략을 수정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점점 더 그럴듯하게 선으로 위장한 악인의 올무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땅은 성도를 하나님의 군사로 훈련시키는 최첨단 홀로그램 서바이벌 훈련장이다. 실체인 영적 세계보다 더욱 실제 같아 보인다.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 눈앞에 있는데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나 혼자서는, 나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님 도와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