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장은 지혜의 길이 은혜와 평안을 주며, 고통 속에서 평안을 배우는 비밀을 보여줍니다. 다윗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참된 승리와 평안을 알아보세요.
잠언 3
16-18 날들의 길이가 그녀의 오른손에 있고 부귀와 영광이 그녀의 왼손에 있다. 그녀의 길들은 은혜의 길들이고 그녀의 모든 통로는 평안이다. 그녀는 그녀를 붙잡는 자들에게 생명나무니 그녀를 잡는 모든 자는 행복하다고 불릴 것이다. (직역성경).
평안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최악의 평안을 누리느니 막강한 전투력을 키워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예수님은 결코 연약하신 분이 아니다. 다윗 왕국의 평안도 결국은 그의 손에 묻은 수많은 피의 대가였다. 테러를 제압하는 군인들은 최소한 그 칼에 맞는 것과 비슷한 고통 정도는 느껴봐야 한다고 하더라. 다윗은 사자와 싸우며 그러한 고통을 미리 경험하였고 골리앗 앞에서 결코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이 모형 칼이라도 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고통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부름받은 군사라면, 전쟁에 능한 용사로 부름받았다면, 주먹에 맞을 때, 화살에 관통당할 때, 전쟁 상황에서의 두려움, 목숨의 위협 등등의 고통을 모의 상황에서 미리 느껴보는 것이다. 고통을 아는 자가 더 잘 대처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쟁에 능한 용사가 되는 것이다.
지혜의 길들은 은혜의 길들이고 그녀의 모든 통로는 평안이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지혜는 십자가였다. 그렇게 사랑하시던 예루살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을 맛보며 죽으심으로 대신 갚으신 것이다. 그러니 그분은 전쟁에 능한, 항상 승리하시는 왕 중의 왕이 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지혜를 따라, 그녀의 가장 큰 지혜를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상처받은 치유자로 일어서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자본주의 바탕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 통로가 막힐 때도 나는 평강을 누릴 수 있겠는가. 대적이 나의 정신을 무너뜨리려 할 때, 나는 누구를 의지하여 일어나겠는가. 요셉처럼, 노예로 끌려갈 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힐 때에도 여호와 앞에서 신실하겠는가. 여호와 앞에서 좁은 길을 가려 하는 자 앞에 왜 자꾸 불편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가문에 흐르는 저주인가.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 모두가 어쩌면 고통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일 것이다. 돈을 움켜쥐고 믿는 자들의 마음을 훔치려는 대적의 모든 공작에 당당히 맞서 싸우라는 선물이다.
삶이 끊어질 것 같은, 목숨이 나갈 것 같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맛본 사람들은 결코 탐욕에 잡히지 않는다. 다시 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선물은 평강이며 보상은 부귀와 영광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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