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5장 말씀을 중심으로, 인간의 본성과 영적 싸움, 교만과 음란에 대한 성찰을 다룹니다. 나의 모든 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켜보시는지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잠언 5
21 참으로 여호와의 눈앞에 사람의 길들이 있으니 사람의 모든 길을 그가 살피신다. (직역성경)
사람의 모든 길, 즉 나의 모든 길을 그가 살피신다. 성경은 직설적으로 말한다. 사랑스런 네 아내의 젖가슴으로 흡족해하라. 어찌하여 이방 여자의 가슴을 안고 있느냐? 네 모든 길이 여호와 앞에 있어서 그가 너의 모든 길을 살피고 계신다.
요셉은 이것을 알았다. 그래서 청년 때에 한순간의 큰 범죄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더라도 차라리 그 편이 그에게는 여호와 앞에서 득죄하는 것보다 더 좋았다.
일흔이 넘은 은퇴한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내 안에 음란이 그대로 있어, 욱하는 것이 아직도 그대로 있어, 35년이 넘도록 이것과 싸웠는데, 그런데 그것들이 내 안에 그대로 있어. 나는 아직도 이것으로 인해 회개해야 돼”
하시며 운다. 또 백세 넘으신 자기 아버지 목사님이
“나의 교만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지금도 나의 교만함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 내 안에 교만함이 그대로 있거든, 아들 박 목사야. 나는 언제까지 이것과 싸워야 할까? 언제까지 이것을 회개해야 할까?”
하시며 아들 목사를 끌어안고 우셨다는 고백을 들었다.
그분들의 고백을 들으며 흐르는 내 눈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단 한 순간의 동정일까, 아니면 나 또한 그것과 처절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일까.
나 또한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음란과 싸우고 있다. 교만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회개한다. 그런데도 음란한 생각들과 욱하는 마음들, 복수하여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들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이다. 사탄이 뿌리는 가라지도 있다. 즉시즉시 처낸다. 그러나 본성은 내 속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물론 분리하면 된다. 그러나 악한 영들의 활동 이전에 나의 육체의 본성이 그것을 원한다. 이제야 인생의 반박에 안 살았으니 뭐 할 말이 있겠냐만은…
육체는 그렇다. 늘 음란하고 정욕적이며 자기 중심적이다. 그러니 평소 얌전하던 맹수도 굶주림 앞에서는 다른 생명을 잡아 찢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순한 양들 중에서도 그리로 안 가겠다고 버티며 냅다 도망치는 양들이 더러 더러 있는 것이다. 자기의 씨를 퍼트리기 위하여 암컷을 놓고 서로 싸운다. 이게 육체다. 내가 옷처럼 입고 있는 그 육체. 그러니 이 옷을 입고 있는 한 나는 죽을 때까지 음란과 정욕, 그리고 교만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길이 여호와와 하나님의 눈앞에 있다. 더하여 그분이 나의 모든 길을 지금도 살피고 계신다. 내가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떠나서, 지금 얼마나 세상과 자신과 싸우고 있느냐,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가, 오늘도 예수님 한 분만을 사랑하려고 몸부림쳤는가. 내 온 마음을 주님께만 드리려고 하였는가, 아내를 내 목숨처럼 사랑하려고 하였는가, 어린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대우하였는가 등등 이런 것들, 나의 마음을 살펴보신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볼 때 주님이 지금도 살피시는 것은 단 하나일 것이다. “기범아, 너는 나의 신부인가? 나의 신부로 살았는가? 오늘도 나의 신부로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등불을 준비하라.” 아멘. 오늘도 예수님 앞에서 살도록 주님, 나의 마음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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