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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인의 희망과 악인의 두려움, 기쁨으로 끝나는 삶 – 잠언 10장

    나는 잠언10장을 읽으며 의인의 희망과 악인의 두려움을 비교하며 생각해보았다. 기쁨으로 끝나는 삶은 의인의 갈망이 이루어질 때 주어지고, 악인의 두려움은 폭풍처럼 사라진다.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해 아이들을 붙잡던 내 마음, 혈기에서 벗어나 회개와 성령의 도움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실제 경험을 나눈다.

    잠언 10 24-25,28 (직역성경)
    악인은 두려워하는 것이 그에게 오나 의인들은 갈망하는 것이 주어질 것이다. 폭풍이 지나갈 때 악인은 없어지나 의인은 기초가 영원하다. 의인들의 희망은 기쁨으로 끝나고 악인들의 기대는 사라진다.


    잠언 10:24-28을 보면서, 악인과 의인의 삶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 악인은 두려움이 임하고, 폭풍이 지나가면 사라진다.
    • 의인은 갈망하는 것이 주어지고, 희망은 기쁨으로 끝난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내게 임하면, 그것 자체가 악이 된다.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으면 분노와 범죄로 이어진다. 모든 두려움은 결국 수치와 고통을 동반하며, 폭풍처럼 사라질 것이다.

    아직 어린 자녀들을 놓지 못하고 있다면, 내 마음도 여전히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 두려움으로 붙잡고 통제하려 한다. 아이들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혈기가 올라온다. 이런 반응들은 상처와 트라우마의 결과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을 회개하고, 그 사건들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모든 두려움이 떠나가고, 사랑으로 행하는 의인의 갈망이 주어지며, 기쁨으로 끝날 수 있다.

    한 가지 감사한 변화가 있다. 전에는 혈기로 시작해서 혈기로 끝났다. 요즘에는 시작 톤도 낮아졌고, 끝은 기쁨으로 맺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혈기가 올라와 입이 살짝 열려도 바로 회개가 되며, 스스로를 통제할 힘이 생긴다. 성령께서 나의 입술을 닫아주시고, 주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셨다.

    이제 조금 더 아이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힘을 빼겠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원본

    의인들의 희망은 기쁨으로 끝난다. 의인들의 갈망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욥이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내게 임하였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악이다.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으면 분하여 범죄한다. 모든 두려움은 선악과의 열매이다. 수치가 따라온다. 폭풍이 지나갈 때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던 것이 내게 올 것이고, 선함으로 갈망하는 것도 내게 주어질 것이다.

    내가 아직 어린 자녀들을 놓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않아 두려움으로 아이들을 붙잡고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내 뜻대로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혈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상처와 트라우마의 반응이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내가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 사건들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모든 두려움이 떠나가고, 사랑으로 행하는 의인의 갈망이 주어지도록, 기쁨으로 끝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감사한 것이 있다. 전에는 혈기로 시작하여 혈기로 끝났다. 그러나 요즘에는 전보다 많이 낮아진 톤으로 시작하고 끝도 기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혈기가 올라와 입이 살짝 열려도 바로 회개가 되며, 스스로를 통제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다. 성령께서 나의 입술을 닫으시는 것이 있다. 얼마나 감사한가. 이제는 조금 더 아이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겠다. 조금 더 힘을 빼겠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 분노하는 이유 – 내면의 깊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분노하는 이유 – 내면의 깊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부모가 어떠하면 그 자녀도 어떠한 법이다. 화를 잘 내는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 역시 그 마음에 분노가 가득 하다. 왜 그럴까. 어릴 때, 내 마음 대로 할 수 없는 그 때에 끝도 없이 화내는 부모님 밑에서 얼마나 두려웠나. 그러나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는 절대 안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첫 걸음이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네 총명으로 그런 생각을 그만두어라. 12 네 마음을 훈계에 가져가고 네 귀를 지식의 말들에 가져가거라. 19 들어라, 내 아들아. 그래서 지혜로워라. 네 마음을 그 길로 인도하여라. 18 반드시 미래가 있으니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잠언 23:4, 직역성경).

    분노와 두려움

    나의 마음을 부에 가져가지 말고 훈계에, 나의 귀를 지식의 말들에 가져가서, 아빠의 말씀들을 듣고 나의 마음을 그 길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

    그럼 어떻게 듣는가, 말씀을 통해서, 예배 가운데, 꿈과 상황들… 왜 나의 오른쪽 눈에 상처가 났는가. 오늘 새벽의 그 이상한 꿈의 의미는 무엇인가. 분노라는 영이 이런 식으로 나를 덥는구나.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부를 선택하여 끝 없이 쫓아간다. 상황들이 뜻 대로 통제되지 않을 때 두려움에 휩싸이면 조선시대 도령 같이 생긴 혈기의 영체가 와서 뒤에서부터 나의 눈과 생각을 강제로 잡아 옷처럼 등줄기를 타고 흐려며 감싸 입혀진다. 그것이 혈기요 분노인 것 같다. 남자가 가끔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어찌 보면 어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잡혀 움츠려숨는 것 아닐까. 마치 어딘지 모르는 캄캄한 산속을 헤메이는 어떤 한 사람 처럼 말이다. 그러다 동굴을 발견하면 거기에 들어가 숨는 것이다. 도령의 영이 와서 그를 잡을 때 까지.

    험한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결국 부를 선택하게 되어있다. 그것이 세상 사탄의 경제 시스템이거든.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그것을 이루려 애쓰지 마라. 그만 하라. 그리고 아빠의 말씀, 훈계의 말씀들에 너의 마음과 귀를 가져가서 듣고 네 마음을 돌이켜 그 길로 인도하라. 내가 너의 삶을, 미래를 설계하였다. 그래, 반드시 네 미래가 있다. 사막의 셀 수 없는 모레알보다 너에 대한 나의 계획이 이렇게 많다.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들아, 나를 신뢰하여 나의 말씀을 듣고 나의 길로 너의 마음을 돌이키거라. 부가 아니라 나, 곧 너 기범이의 아빠가 기범이 너를 평강으로 인도한다. 나의 아들아, 내 손을 잡고 나를 신뢰하렴.

    예수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