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어떠하면 그 자녀도 어떠한 법이다. 화를 잘 내는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 역시 그 마음에 분노가 가득 하다. 왜 그럴까. 어릴 때, 내 마음 대로 할 수 없는 그 때에 끝도 없이 화내는 부모님 밑에서 얼마나 두려웠나. 그러나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는 절대 안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첫 걸음이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네 총명으로 그런 생각을 그만두어라. 12 네 마음을 훈계에 가져가고 네 귀를 지식의 말들에 가져가거라. 19 들어라, 내 아들아. 그래서 지혜로워라. 네 마음을 그 길로 인도하여라. 18 반드시 미래가 있으니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잠언 23:4, 직역성경).

나의 마음을 부에 가져가지 말고 훈계에, 나의 귀를 지식의 말들에 가져가서, 아빠의 말씀들을 듣고 나의 마음을 그 길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
그럼 어떻게 듣는가, 말씀을 통해서, 예배 가운데, 꿈과 상황들… 왜 나의 오른쪽 눈에 상처가 났는가. 오늘 새벽의 그 이상한 꿈의 의미는 무엇인가. 분노라는 영이 이런 식으로 나를 덥는구나.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부를 선택하여 끝 없이 쫓아간다. 상황들이 뜻 대로 통제되지 않을 때 두려움에 휩싸이면 조선시대 도령 같이 생긴 혈기의 영체가 와서 뒤에서부터 나의 눈과 생각을 강제로 잡아 옷처럼 등줄기를 타고 흐려며 감싸 입혀진다. 그것이 혈기요 분노인 것 같다. 남자가 가끔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어찌 보면 어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잡혀 움츠려숨는 것 아닐까. 마치 어딘지 모르는 캄캄한 산속을 헤메이는 어떤 한 사람 처럼 말이다. 그러다 동굴을 발견하면 거기에 들어가 숨는 것이다. 도령의 영이 와서 그를 잡을 때 까지.
험한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결국 부를 선택하게 되어있다. 그것이 세상 사탄의 경제 시스템이거든.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그것을 이루려 애쓰지 마라. 그만 하라. 그리고 아빠의 말씀, 훈계의 말씀들에 너의 마음과 귀를 가져가서 듣고 네 마음을 돌이켜 그 길로 인도하라. 내가 너의 삶을, 미래를 설계하였다. 그래, 반드시 네 미래가 있다. 사막의 셀 수 없는 모레알보다 너에 대한 나의 계획이 이렇게 많다.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들아, 나를 신뢰하여 나의 말씀을 듣고 나의 길로 너의 마음을 돌이키거라. 부가 아니라 나, 곧 너 기범이의 아빠가 기범이 너를 평강으로 인도한다. 나의 아들아, 내 손을 잡고 나를 신뢰하렴.
예수님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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