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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언 23의 교훈: 부자가 되려는 유혹보다 지혜와 믿음을 선택하라

    잠언 23장은 부자가 되려는 헛된 욕심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를 따를 것을 강조합니다. 좌절 대신 희망을 붙잡고, 가정과 믿음 안에서 참된 소망을 찾는 삶을 나눕니다.

    잠언 23장
    4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네 총명으로 그런 생각을 그만두어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들을 질투하지 말고 오직 온종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질투하여라. 18 반드시 미래가 있으니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들어라, 내 아들아. 그래서 지혜로워라. (직역 성경)

    듣는 자가 지혜롭다. 일단 들어야 할 것 아닌가. 길가, 돌짝밭이라도 일단 들어야 할 것 아닌가.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도 결국은 그 바위를 깨뜨리기도 한다. 자기 능력이 아니다. 가을의 이슬이 얼어 그 힘으로 돌을 깨는 것이다. 지금 당장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말자. 옥토밭이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 나의 상태가 옥토밭이 아니라면 어쩌겠는가. 그래도 심어야 할 것 아닌가. 일단 심어야 뭐가 되든 되지 않겠는가. 혹시 아는가. 갈라진 틈 사이로 물이 스미고, 추운 겨울을 겪으며 그것이 얼어 바위를 깨뜨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부자가 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조금 더 편안함을 위해 조금 더 많이 벌어보려는 유혹을 버리고 오히려 그 시간에 지혜를 듣자. 가족과 자녀들과 성도들과 시간을 조금 더 함께 보내자. 그것이 더 좋다. 속사람 치유받을 때, 나의 부모에게 그렇게 말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하는 것 같다. 나만 그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질투하여 그들처럼 주님께 다 드리는 것이다. 가정도, 재정도, 미래도, 현실도 다 드리면 내가 붙잡을 게 없다. 가장의 책임감과 그 압박감도 다 사라진다. 가정에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무능해 보이는 자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어쩌겠는가. 다 서로 감내하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그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반드시 미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는다. 길바닥에 나앉을 것 같아도 괜찮다. 절대 그렇게 안 될 거니까. 일을 할 수 없어서 백수여도 괜찮아. 염려하지 마. 절대로 안 굶고, 자식들 안 굶길 거니까. 주님이 도우신다. 그분이 이끌어 가신다. 업어 인도하신다. 일단 주님 손에 다 맡겨 보라. 그럼 알게 된다. 경험하게 되어 있다.

    나의 청소년 아이도 이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고 입히시는지 옆에서 다 봤으니까.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키워 간다. 어떤 사춘기 아이는 자기 동생에게 그런다. “필요한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주님께 다니엘처럼 구해 봐. 다 주셔.” 그 아이의 간증 아닌가. 그 아이는 먹고 싶은 음식들이 따라다닌다. 그냥 잠깐 기도했을 뿐인데, 어디에 가든 자기 원하는 음식이 거기 있다고 그런다. 밤에 너무 더워 못 견디겠으면 꿈속에 목사님께서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주실 때도 있다. 또 어떤 아이는 늘 우산이 따라다녀. 그 아이와 함께 다니면 비 맞을 일 없다.

    주께서 내게 허락하신 나의 미래가 있다. 내 주님이 영원하신데 어찌 나의 희망이 끊어지겠는가. 예수, 나의 참 소망. 아멘.

  •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 잠언 9장 묵상과 회개의 고백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 잠언 9장 묵상과 회개의 고백


    잠언 9장의 지혜의 부르심을 따라 변화된 삶의 이야기.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걸어가며 주님의 음성에 응답한 신앙인의 회개와 성화 여정을 나눕니다.


    잠언 9장

    4 단순한 자가 누구냐? 이리로 발길을 돌려라. 그리고 생각이 부족한 자에게 지혜는 말한다. 5 오너라,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포도주를 마시며 6 단순함을 버리고 살며 총명의 길로 걸어가거라. 12 만일 네가 지혜롭다면 너는 너 자신에게 지혜롭지만 네가 오만하다면 네 혼자서 짐을 짊어질 것이다. (직역성경).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단순하고 생각이 부족한 자는 지혜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반응한다. 어떤 이는 니고데모 처럼 순전할 것이고, 또 누구는 사도 바울 처럼 완악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의 부르는 음성을 듣고 응답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가슴에 칼을 품고 있었지만, “기범아 나와 함께 가자”라는, 내면에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그만 무엇에 홀린 듯 “네 주님”하고 대답했었다.

    가문의 무엇이 어떻고, 불의한 권위자가 저쩌고 하는 말들은 안하겠다. 나의 죄는 내가 짓는 것이다. 중독에 잡혀 음란에 빠졌던, 습관적인 죄가 있던, 조상으로부터 대물림되었건, 상관 없다. 나의 모든 죄는 저 사람 때문에가 아니다. 다 내가 지은 것이다. 내가.

    오늘 내게 주어지는 말씀은 어쩌면 성화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아빠를 죽이려던 마음이, 한 순간에 그분의 구원을 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의 생명과 그분의 생명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상처는 별개의 문제이더라.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이다.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걸어가기 위해 여전히 몸부림 치며 오늘을 주님께 맡긴다.

    주님, 오늘도 나의 손 붙들고 나와 함께 가세요. 오늘 다시 나를 주님의 멍애에 붙들어주세요. 성령님, 오늘 나를 떠나지 마세요. 내가 성령님을 쫓아내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주님과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릴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