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5장을 통해 배우는 지혜와 삶의 교훈. 꿀처럼 달콤하지만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는 지혜, 원수에게 선을 행하는 의미, 잠언 묵상의 중요성을 풀어봅니다.
잠언 25
16 꿀을 네가 발견했으면, 필요한 만큼만 먹어서 네가 그것으로 배를 불려 토해내지 않게 하여라. 21 너를 미워하는 자가 굶주리면, 그에게 빵을 먹이고 그가 목마르면, 그에게 물을 마시게 하여라. (직역성경)
맛있는 꿀 한 통을 다 먹는 방법은, 조금씩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다. 지혜의 말씀도 이와 같아서 한 번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주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것도 하나, 딱 하나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어느 하나에 몰입하도록 만드셨다. 결코 멀티가 아니다.
어느 날 잠언 묵상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평생의 좋은 습관으로 만들기에 이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주님의 모든 말씀이 다 그렇지만, 특히 잠언은 파도 파도 끝없이 솟아 흐르는 샘물 같다. 내가 잠언에서 취하고 있는 부분은 아직도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직 접근도 할 수 없는 말씀들이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하나하나 깨달아 갈 때마다 그렇게 내 영혼에 달고 귀한지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평생 먹어도 다 먹을 수 없는 꿀 한 통이 있다면, 지혜 중의 지혜, 성경 중에서도 바로 잠언의 말씀이라 생각한다.
나는 21절의 말씀이 늘 어렵다. 원수에게 선을 행하는데, 이것이 원수의 머리에 숫불을 쌓는 것이란다. 여호와께서 보답하신단다. 이 원수가 사탄도 아니고, 나의 가족이고 친구일진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어려웠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상대의 머리에 숫불을 쌓는 것은 곧 그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이라 하더라. 그래서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게 된단다. 그렇게 되려면 도대체 원수에게 얼마나 선을 행해야 하나? 그러나 나는 원수가 없다.
요셉에게는 형들, 다윗에게는 사울, 예수님께는 유다? 아니야, 예수님은 그를 끝까지 “친구여” 하셨다. 내게는 그만한 원수가 없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더 이상 그들은 나의 원수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다른 원수감들이 내 앞에 나타나게 될까? 아하! 나를 미워하는 할머니가 딱 한 사람 있기는 하다. 불쌍한 여인이 있다. 생각해보니 그 할머니에게 선을 행해 본 적은 없네. 피하려고만 하였지. 근데 그 할머니 잘 먹고 잘 산다. 굳이 선을 행해야 하나? 고민 좀 해봐야겠다. 예수님, 어떻게 하죠? 도와주실래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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