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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인의 말습관, 당신의 말은 안전한가요? – 말씀 묵상 : 잠언 17

    잠언 17장을 통해 귀인의 바른 말과 입 조심의 중요성을 배우며, 일상 속 말의 힘을 돌아보는 묵상입니다. 오늘은 잠언 17 말씀으로 귀인의 말습관과 교훈을 함께 살펴보고, 오늘 묵상을 통해 나의 말습관을 점검해봅니다.

    바른 말이 어리석은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데 하물며 귀인에게 거짓 입술이 어울리겠느냐? (잠언 17:7, 직역성경)

    귀인의 말과 지혜

    오늘 말씀은 내게 귀인을 상기시킨다. 귀인에게는 거짓 입술이 어울리지 않으며, 입을 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잠언17, 귀인, 말습관 키워드 강조)

    아이들의 말습관 관찰

    아이들의 말놀이에서는 다소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도 이러한 말투로 행동한다면 주변 사람들은 피할 것이다. 귀인에게 거짓 입술, 왜곡된 말, 비난의 말은 이와 같다. (말습관, 바른말 키워드 강조)

    조용함과 관계 회복

    여름과 추수철의 비처럼 우리의 왜곡된 말이 주변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조용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집에서도 아이들은 말의 중요성을 배우고, 작은 사과와 양해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게 한다. (입조심, 가족, 아이교육 키워드 강조)

    실수와 교훈

    말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엠 쏘리를 생활 속에 익혀 중간이라도 가는 지혜를 갖는 것이다. 나는 귀인으로서, 나의 입은 예수님의 것이다. 아멘. (신앙묵상, 예수님 키워드 강조)


    글 원본

    오늘 이 말씀에 내게 말을 건다. 너는 귀인이다. 그래서 네게는 거짓입술이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 그 입 닫아!

    남자 어린 아기들이 좋아하는 말놀이가 있다. 똥, 설사, 천년 묵은 빤쓰, 뭐 이런것들이다. 책도 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같은… 가끔은 너무 거시기해서 귀가 너무 힘들다 싶으면 자제하고 절제시키다가 아이에게 한 마디 한다. 지금부터 말하지 마! 이렇게 안하면 제동이 안 걸려.

    뭐 그런거다. 어른이 되어서 저러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아마 다들 도망가겠지. 창피해서 나랑 같이 안 다니려고 할 것이다. 귀인에게 거짓 입술이 이와 같은 것이다. 왜곡되고 비뚤어진 말들, 비꼬고 비난하는 말들 다 이런 것들이다.

    여름에 눈처럼, 추수때 비처럼, 요즘 내리는 비가 딱 그렇지 않은가. 과수원 주인들이 얼마나 근심하고 있는가. 그러니 나의 입에서 왜곡되어 비뚤어진 말들이 나갈 바에야 아에 입을 꾹 닫는 것이 더 좋다. 조용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집에 있다 보면 가끔 주변에서 말을 듣는다. 여보 아이들에게, 그런 말은 하는거 아니에요. 아빠는 왜 그렇게 말해서 누나 기분 나쁘게 만들어요. 아빠, 우리끼리 예기하고 있을때는 끼어들지 마세요 같은 말들이다. 아빠는 잘 모르면서 왜 아무렇게나 말해요. 6살짜리도 내게 이런 말을 가끔식 한다. 그럼 어쩌나. 바로 미안해, 아빠가 잘 몰랐어. 아이엠 쏘~리! 정말 미안해.

    그러나 전에는 이 말이 안 나왔다. 나의 권위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다. 나도 나의 엄마에게서 몇번, 그리고 전에 박목사님에게서 한번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사람이 말 실수를 안하고는 살아지지 않는다. 어쩌다가 입이 방정일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아이엠 쏘~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다. 그러면 이따금식 실수 해도 중간은 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귀인이다. 만점아빠 최고. 나의 입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아멘.

  •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행복하다: 잠언 16장 20절 – 믿음과 분별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근심하지 않는다. 악을 분별하고 주님께 신뢰를 두는 자가 참된 행복을 누린다. 오늘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삶을 선택하라.

    말씀:
    “어떤 일을 분별하는 자는 복을 발견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행복하다.”
    잠언 16:20 (직역성경)

    누구를 의지한다는 것은 전적인 신뢰를 뜻한다. 막내를 어린 형제에게 맡기고 외출할 수 있을까. 마음이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맡긴다면 근심이 없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이와 같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마음의 평강을 얻는다.

    예전에 아이들을 믿음의 사람에게 맡겼을 때 마음에 아무 걱정이 없었다. 그것이 내가 예수님께 내 자녀를 올려드릴 수 있는 이유다. 많은 사람이 걱정할 때에도 나는 주님께 맡기고 기도한다. 그분이 기다려주셨듯, 우리도 기다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 나를 처음 부르신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잃지 않으셨다. 그분이 내게 행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내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염려하지 않는다. 여호와를 의지하면 근심이 사라진다.

    어린아이는 집의 형편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부모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하나님을 믿기에 오늘도 행복하게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어떤 상황이 와도 예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릴 것이다.

    오늘의 적용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은 현실의 불안보다 크다. 오늘 하루, 근심 대신 신뢰를 선택하라. 주님께 맡길 때 마음의 평강이 임한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모든 상황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일을 분별하는가. 악을 분별하여 떠나는 자가 복을 얻는다. 사탄의 왜곡된 말들을 분별하여 거절하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순종한다. 그것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이다. 아멘.


    원 본

    누구를 의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예를 들어 내가 막내를 9살 셋째에게 맡기고 외출할 수 있을까. 어린아이들을 위의 사춘기 형, 누나에게 맡기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을까. 불가능하거나 마음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할 것이다.

    전에 딱 한 번 어느 분께서 나의 아이들을 며칠 맡아주신 적이 있었다. 아무 걱정도, 어떤 근심도 없었다. 내가 큰아이와 둘째 아이를 예수님께 올려드리고 룰루랄라 하는 이유다.

    큰 아이를 염려하는 소리들이 있다. 그 아이를 위해 중보해 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 왜 염려해야 하나. 미혹에 가린 거 맞다. 그래서 저러고 있는 거 맞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또 다른 무엇을 푸시해야 하나. 부담을 줘야 하나. 그 아이, 참 많이 아프다. 누구나 겪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가장 아픈 것이다.

    내가 그 아이만 할 때, 내 아빠를 칼로 찌르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은 그저 “기범아,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가 다였다. 예수님께서 나 같은 자도 기다려주셨으니 그 아이 역시 기다려주실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이 수십 년 뒤로 더 밀린다 해도 말이다. 나는 그저 주님께 맡기고 기도할 뿐이다. 나도 사명이 있고 그 아이도 사명이 있다면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려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실 그때부터 주님은 나를 조금이라도 잃어버릴 만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이 내게 무엇을 하시던, 그것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얻고 또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염려하지 않는다.

    여호와를 의지하면, 특히 오늘날의 세상에서 물질적인 부분까지도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한다면 어떤 근심도 걱정도 없는 것이 정상인 거다. 어린아이는 자기 집의 재정 형편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아기들은 돈 없이도 하루를 아주 행복하게 보낸다. 그러면 나도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는가. 그랬다.

    나는 내일도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떤 희한한 상황이 주변을 우겨싸도 예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릴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선포이다. 무화과나무 잎이 어쩌고저쩨도 난 그저 예수님만으로 즐거워한다.

    어떤 일을 분별하는가. 악을 분별하여 악에서 떠나는 자가 복을 발견한다. 사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왜곡되고 뒤틀린 말들을 온전히 분별하여 쳐내고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순종하겠다. 아멘.

  • 포도주와 독주, 그리고 용서 – 잠언 20장

    잠언 20장 말씀을 통해 포도주와 독주가 사람을 속이는 것처럼, 우리의 분노와 조롱이 삶을 가리운다는 깨달음을 나눕니다. 건망증과 실수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닮아가는 삶, 용서와 사랑의 변화를 묵상합니다.

    잠언 20
    1 포도주는 조롱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날뛰게 하는 것이므로 누구든지 그것들에 의해 속는 자는 지혜롭지 아니하니라. (흠정역).

    나는 오늘 누구를 조롱하였는가, 분하여 날뛰었는가. 밤에, 졸릴 때 짜증 부리는 어떤 아이를 조롱하였나. 그렇진 않았다. 최근에 교회 가는 길에 아내가 무엇을 집에 놓고 왔다. 예전의 나였으면 어떠했겠나. 길길이 날뛰었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한마디 하려는데 자동으로 입이 닫혔다. 속에선 부글부글 끌었지. 그리고 잠시 후에 사랑스러운 얼굴로 “여보 최고, 엄지 척, 여보가 제일 이뻐”가 나왔다. 나 많이 변했다.

    포도주와 독주는 속인다. 자신을 못 보게 한다. 자기 눈의 들보를 가린다. 차 키를 깜박하여 자동차 옆에서 온 가족 기다리게 한 적이 한두 번이었나. 우산통에 열쇠 던져 넣고 한 시간 반을 씩씩거리며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나로 말하면 건망증 대환자이다. 깜박 깜박! 그러나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아빠 하나님은 감사하지 않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자비하시다. 그러니 너희도 아빠를 닮아 긍휼을 베풀라. 판단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라, 아낌없이 주라고 하시는 것이다. 내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말은 곧 이웃을 판단 정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선악나무의 열매, 포도주와 독주를 입에도 대지 않는 자가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먼저는 자신을 위한 것이요 둘째는 선악나무의 열매를 초월하여 예수님처럼 아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 지혜와 예배로 하루를 채우는 삶 – 잠언 8장

    잠언 8장을 통해 주님의 지혜와 예배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삶의 무게 속에서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법을 배워 보세요.

    잠언 8
    내 입의 모든 말은 의롭고 그것들 안에는 비뚤어짐이나 굽어짐이 없으니 깨달은 자에게는 그것들 모두가 정직하며 지식을 발견한 자들에게는 바르다. 은 말고 내 훈계를 취하고, 정제된 금보다 지식을 취하여라. (직역성경).

    주님의 지혜는 그것을 깨달은 자에게만 꿀 같고 진주 같은 것이다. 그분의 지혜를 듣는 자는 먼저 그분의 훈계를 듣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속도가 빠르다. 오늘 아침,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나를 누르려고 한다. 이때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그 무게의 감정을 내가 받아들이려 하는 자신을 보면 회개하고, 동시에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니 주님 손에 던져버린다. 나의 감정을 주님께 다 쏟아 드린다.

    예배는 매주 몇 번 교회 가서 드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매일, 시간마다, 순간순간 주님을 경험하며 양처럼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양들이라면 모두가 다 그렇게 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은금보다도 지금 이 시간에 주님을 만나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 이처럼 나의 하루를 온전히 예배로 채우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나의 친밀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땅, 즉 내 안에 이루어지도록, 그래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모든 시험에서 주님이 지켜주시도록, 그분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잘 따라가는 것이다. 오늘 일용할 양식은 내 알 바 아니다. 그것은 목자가 주시는 것이다. 나는 그저 오늘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그것 한 가지를 붙들고 순종하면 그만이다. 입을 닫는 것이다. 교만하여 패역한 입(이것을 지혜가 미워한다)을 닫는 것이다. 내 입이 언어를 잃어버릴 때까지 입을 닫는 것이다. 모세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다.

    외국에 사는 나의 가족을 보니 한국말도 어눌하고,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뭐 참 애매하다. 전에 보니 우리 교회 태필린도 잘 못 따라 읽더라. 나의 입도 그렇게 닫혀질 수 있을까. 혀가 어눌하여 패역한 말 자체가 잘 안 나올 때까지 입을 닫을 수 있을까.

  • 잠언 27장 묵상: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오늘에 충실하라

    잠언 27장의 교훈은 내일을 자랑하지 말고 오늘 주님 앞에서 겸손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기 자랑과 교만의 위험, 참된 자존감과 겸손의 차이를 묵상해봅니다.

    잠언 27
    1-3 내일을 자랑하지 마라. 참으로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 하지 마라. 이방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 하지 마라. (직역성경).

    내일을 자랑하는 자는 헛된 꿈을 자랑하는 것과 똑같다. 내일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오늘, 내일도 오늘, 그다음 내일도 오늘, 하루가 지나 내일이 오면, 그때도 오늘, 오직 오늘뿐이다. 그러니 오늘 주님 앞에서 겸손하려고 힘써 싸운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것은 자존감이 높은 것과는 다르다. 자존감이 높은 자는 거울 앞에서 행복하다. 누가 “너 참 멋있다”라고 말해주면, “너 그거 이제 알았니?” 할 것이다. 단체사진을 찍어도 멋있는 나를 먼저 찾겠지. 그러나 오늘 말씀이 말하는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자는 자기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들을 자랑하고 스스로 대견해하며 칭찬한다. 교만한 것이다. 선한 자는 자신에게 만족하고, 악인은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가.

    마음의 동기가 무엇인가? 교만함인가, 겸손함인가. 교만하면 자신이 하는 일로 “나 이런 사람이야” 하며 으스대고 뻐긴다. 아니면 끊임없이 비교하겠지. 그러나 겸손하면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오직 유일한 나, 예수님짜리,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 즉 나 자신을 보고 만족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거울 앞에 서면 남자는 “나 잘났어” 하고, 여자는 “어머, 여기 코가 왜 이래?” 한다고? 아니다. 그 사람이 그런 것뿐이다. “천상 여자”가 있는 반면, “무늬만 여자”인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남자의 성격이 얼마나 섞였는지에 따라 여자는 천차만별이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주님이 어떻게 만드셨건 상관없이 마음의 동기는 속일 수 없다. 예수님, 내 마음의 동기가 주님 앞에서 항상 진실하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 부지런함과 탐욕, 하나님 신뢰의 삶 – 잠언 21장

    잠언 21장을 통해 입과 혀를 지키고, 탐욕을 제거하며 하나님 신뢰를 쌓는 방법을 배워보세요. 자녀와 가정을 위한 진정한 부지런함과 감사의 삶을 탐구합니다.

    잠언 21
    23 그의 입과 그의 혀를 지키는 자는 그의 목숨을 환난에서 지킨다. 25 게으른 자의 탐욕은 자신을 죽이니, 이는 그의 손이 일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26 온종일 그는 탐욕을 내나, 의인은 아낌없이 준다. (직역성경).

    가만히 앉아서 어떤 대가 지불도 없이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탐욕이다. 누구는 직장에서, 누구는 기도로, 금식으로 나아가는 이때에, 성경은 부지런히 빵으로 배부르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입과 혀를 지키는 것 역시 자기 힘으로 되지 않는다.

    무엇이 부지런함인가. 그저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조금 더 풍요롭게 살고 싶어서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만드는 것이 부지런함인가. 죽어라 기도하여 필요한 재물을 손에 넣는 것이 부지런함인가. 만약, 하나님이 내게 아버지의 사랑을 가르치시려는데 저 자녀를 바꿔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내게 재정 훈련을 시키시려는데 필요한 재정을 달라고 하고 있다면, 초점이 안 맞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자녀들 있는 모습 그대로 끌어안고 범죄를 간과하여 입을 닫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럴 때에는 주님께 올려드리고, 손을 떼고 죽이든지 살리든지, 길거리에 내앉히든지 알아서 하시라는 마음으로 그냥 무릎으로 주님 앞에서 감사함으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죽을 것 같아도, 미칠 것 같아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모든 부담감도 다 내려놓고 가족들 앞에서 떳떳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하시려는 것은 내 속에 깊이 박혀 있는 탐욕을 제거하시려는 것이다. 기근 때에 까마귀를 경험하고, 이리저리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주를 향한 신뢰를 견고히 만들어가는 과정들이다. 자녀의 사랑, 신부의 사랑을 넘어 아빠의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들이다. 길거리에 나앉을 것 같은 상황에서 주님이 도우시지 않는가. 자녀를 굶긴 적 단 한 번도 없지 않는가. 그럼 된 것이다. 심지어 길거리의 노숙자도 불러내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사용하시지 않는가. 그들은 미친놈 소리를 들으면서도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예수님을 전하고 있지 않는가. 누구든지 이런저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지 않는가.

    그럼 오늘 내게는 어떠한 기회들이 찾아올까. 바로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나의 시간을, 돈을, 물과 음식을, 그 밖에 많은 것들을 예수님을 위해 내어놓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무엇을…

  • 지혜로운 자와 부지런한 자의 삶 – 잠언 13장

    잠언 13장은 지혜로운 자가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부지런한 자가 풍족함을 누리며, 입을 지키는 자가 생명을 얻는 지혜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묵상과 교훈을 함께 나눕니다.

    잠언 13
    1 지혜로운 자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오만한 자는 꾸지람을 듣지 않는다. 2 사람은 입의 열매로부터 좋은 것을 먹으나… 3 그의 입을 지키는 자는 그의 목숨을 지키고… 4 부지런한 자들은 원하는 것이 풍족해질 것이다. (직역 성경).

    입의 열매, 입을 지키는 자, 부지런한 자는 좋은 열매를 먹고 자기 목숨을 지키며 원하는 것이 풍족해진다. 곧 지혜로워서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자들이다.

    이들은 겸손하여 훈계를 듣고 회개하여 돌이킬 뿐만 아니라, 조언을 듣고 점점 자신의 입을 지키며 자기의 밭에서 부지런함을 구한다. 부지런하여도 헛된 곳, 남의 밭에서 부지런함은 아무 유익이 없지 않은가. 나의 밭, 내게 허락된 구역, 나의 우물, 나의 여인, 나의 하나님, 나의 신앙.

    그러나 지나간 어제의 시간에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의 삶에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오늘, 지금,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나는 입을 지키며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다. 입을 지키려면 교만함을 벗어야 한다. 거만하면 이미 수치가 들어오니 눈앞에서 어떤 트리거가 당겨질 때에 나의 입은 무조건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래, 지혜로운 아들은 평소에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자신의 거만함을 회개한다. 사단이 생각에 뿌리는 끝도 없는 가라지들을 즉시 쳐낸다. 기준자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즉 의, 평강, 기쁨이다. 이것이 깨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이것을 깨는 모든 생각들은 거짓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가라지이니 뒤도 안 돌아보고 쳐 버리는 것이다. 생각을 지켜 겸손함 가운데 머물기 위함이다.

    첫사랑을 지키며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열매가 주어질 것이다. 그들은 지혜롭다. 사랑하는 예수님, 오늘도 나를 붙들어 주세요. 아멘.

  • 거만과 수치, 그리고 겸손이 주는 지혜 – 잠언 11장

    거만과 수치, 그리고 겸손이 주는 지혜 – 잠언 11장

    잠언 11:2 말씀을 통해 ‘거만함이 수치를 불러오고, 겸손이 지혜를 가져온다’는 영적 원리를 묵상합니다. 가인의 선택과 우리의 일상 속 반응을 연결하며, 수치에서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나눕니다.

    잠언 11:2
    거만함이 들어올 때 수치가 들어오나 겸손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 (직역성경)


    오늘은 수치에 관한 메타인지를 하는 날이다. 수치는 거만할 때 들어온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버럭 할 때조차도 수치가 들어온다. 그러니 내게는 쌓여 있는 수치가 그만치 많은 것이다. 가장의, 어른의 뜻에 따르지 않는 아이에게 분노가 올라올 때, 왜 씩씩거리나. 그 이면에 있는 것이 두려움과 수치이다.

    가인은 자기의 수치를 해결하려고 그의 근원을 제거(살인)하는 쪽을 택하였다. 오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부모를, 권위자를, 자녀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없으니 미워하며 자신을 죽이는 쪽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게 모두 죄의 열매, 즉 선악과의 열매 아닌가. 거만하여 두려움과 수치가 따라오니 다른 사람에게 버럭하며 분을 내는 것이다.

    거만할 때 수치가 들어오지, 혈기를 내야 수치가 오는 것이 아니다. 입을 다물어도, 입술을 지켜도 그 전에 교만하면 수치는 그냥 들어온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할까. 회개해야지. 나의 상처를 계속 내어드려야지. 성령이 만지실 때, 수술하실 때 고통스러워 구르면, 그분은 잠깐 하시고 멈추시는 것 같았다. 그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여기까지만 하시나 보다 할 것인가, 나 괜찮으니 계속 하시라고, 통째로 다 가져가시라고 힘써 그분의 손을 끌어당기겠는가.


    예수님, 도와주세요, 오늘 나의 상한 심령을 다 가져가 주세요. 나를 긍휼히 여겨 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