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잠언 묵상

  • 사랑을 구하는 자와 입을 닫는 지혜 – 잠언 17:9 묵상

    잠언 17:9을 통해 배우는 관계의 지혜. 사랑을 구하는 자는 범죄를 덮고, 말이 줄어들수록 가족과 더 가까워지는 신앙적 통찰을 나눕니다.

    잠언 17:9 He that covereth a transgression seeketh love; but he that repeateth a matter separateth very friends. (KJV).

    사랑을 구하는 사람의 태도

    상대의 사랑을 구하게 되면 그의 범죄함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신부의 사랑을 구하는 신랑 역시 그럴 것이다. 뭐 결혼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면서 성숙하게 되면 입을 닫게 되어 있다. 왜냐면, 하나님 앞에서 토설하며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상대방도, 자녀들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품어지는 것이다.

    반복되는 말이 만드는 거리감

    그러나 어떤 사람은 상대의 죄를 계속 되풀이하여 말한다. 니가 그랬지. 과거에 그랬어. 아직도 그러니. 어찌 보면 어린 자녀들 앞에서 나의 모습 같아 부끄럽다. 그러나 나의 입이 바뀔수록, 나의 입이 닫아질수록 자녀들은 그의 아빠에게 이전보다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지르고 보는 경우가 아직 많다. 그러나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주변에서 그런다. 나의 말이 아니다.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길

    내 하늘 아빠가 그러하듯 나도 자녀들에게 사랑을 구한다. 그냥 식구들이 한 집에 다 모여 있으면 행복하다. 그들의 얼굴만 볼 수 있어도 그냥 좋은 것이다. 나의 입이 더욱 닫혀질수록, 그들은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오늘, 주님 앞에 더욱 머물 수 있도록 붙들어 주세요. 아멘.

  •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 항상 잔치하는 삶 – 잠언 15장

    잠언 15장을 묵상하며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라는 말씀의 의미를 풀어봅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말씀과 함께 분노 대신 기쁨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 항상 잔치 같은 하루를 누리는 비밀을 나눕니다.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이나, 패역한 혀는 영을 상하게 한다. 15 가난한 자의 모든 날은 악하나, 마음이 선한 자의 모든 날은 항상 잔치다. 잠언 15:4,(직역성경)

    오만한 자의 교만을 꺾고 회개하도록 이끄는 혀가 있고, 바른 말이라도 심령을 아프게 하는 혀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나를 살리는 말씀만 하셨다. 내게 “너의 거만과 그 큰 거역을 회개하라” 하실 때에도, 나 스스로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말씀하셨고, 과거 지아비를 향해 칼을 품고 있을 그때에도 전혀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범아, 나와 함께 가자” 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셨다. 그분의 입술은 온유한 혀이다. 그분을 닮고 싶을 뿐이다.

    선한 자의 모든 날은 항상 잔치다. 무슨 말이냐면 항상 기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게서 분노가 올라온다면 그 날은 악하다는 것이고, 곧 나는 가난한 자인 것이다.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던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유하다”라고 말씀하셨다. 환경이 어떻든, 재정이 어렵든 상관없다. 알파와 오메가요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실상은 네가 부요하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부유한 자인거다. 정말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면 날마다 기뻐야 하고, 기쁠 수밖에 없고, 고난 가운데 궁핍하다 하여도 부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야말로 전부, 나의 전부 아니신가. 그것이 사실이고 진리다. 그러니 나의 모든 날들은 항상 잔치다.

    며칠 전에 일 때문에 전에 살던 고향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가 40년 살던 집을 보고 참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그 오래되어 낡은 옛날 연립주택. 팔리지도 않는 그 집이 어떻게 눈먼 이단에게 비싸게 팔려서 지금 사는 이곳으로 이사 왔고, 글파를 만났고, 아둘람 같은 이곳에서 자녀 둘을 더 얻지 않았는가. 선하신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신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았으면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 혼자 일해서 6명 대가족을 먹였겠는가. 아니다. 오히려 주님의 도우심과 공급이 얼마나 많았는가.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미래 계획 하나도 세우지 않는데, 그저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주님을 따라가려 할 뿐인데, 뒤돌아보면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이다.

    아내도 내가 찾았는가. 아니, 오히려 나는 삶을 주님께 드렸다. 결혼도 내 삶의 일부 아닌가. 그래서 다 드렸는데, 주님 발걸음 따라가다가 아내도 만난 것이다. 주님께서 내 앞에 데려다 놓으셨는데도 내가 좀 둔해서 그런지 나의 베필감인지도 못알아 보았지. 자녀들도, 학교도, 직장도 다 그렇게 그때그때마다 이끄시고 공급하시는 주님의 손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혈기를 못 이겨 가족들에게 씩씩댔다. 그러니 얼마나 더 회개할 일이 많겠는가. 이제는 나의 삶에서 악한 모든 날들을 다 빼어 버리고, 온전히 잔치날로 채우겠다. 나의 입이 온유한 입술이 되어 갈수록 나의 날들은 더욱 잔칫날에 가까워진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멘.

  • 오만한 자와 지혜로운 자, 회개와 지혜의 길- 잠언 14장

    잠언 14장을 통해 오만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차이를 묵상합니다. 회개와 예배, 주님 앞에 머무는 삶 속에서 참된 지혜를 얻는 길을 나눕니다.

    잠언 14
    6 오만한 자는 지혜를 찾으나 없고, 깨달은 자는 지식 얻기가 쉽다. 7 어리석은 사람 앞에서 떠나라. 네가 지식의 입술들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직역성경)

    오만한 자는 이미 창조주를 거역하였다. 그분의 모든 지혜와 사랑을 거절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떤 지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오만한 자는 쉽게 욱 하고 분을 낸다. 심판자를 대신하여 자기 눈의 들보로 판단하고 정죄하기 때문이다.

    지혜를 찾으려면, 조언을 들으려면 먼저 창조주를 대적하였던 것과 그분의 사랑을 버린 것부터 회개하여 자신의 뜻과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그다음 지혜로부터 주어지는 훈계와 책망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쉽지 않다. 아프고 쓰리다. 그러나 그렇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어제 못했어도 괜찮다. 회개하고 오늘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악한 영이 뿌린 생각에 잡힌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것에 잡혀 순간 욱 하며 열렸던 입을 다시 회개하는 것이다.

    매주 한 번씩 예배를 섬기는 것이 나의 일주일을 그분 앞에 서게 만든다. 지난 50일 특별 기도 때는 매주마다 3일씩 연속으로 예배를 섬겼다. 딴짓할 정신이 없었다. 오로지 주님 앞에여야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라. 그때 참 행복하지 않았나.

    오늘 행복하고 싶다면 다른 것 없다. 그냥 주님 앞에서 머무르는 것이다. 주님 집에서의 문지기 하루가 이 땅에서의 천년보다 좋은 것이다. 그러니 어리석은 사람을 옆에 두고는 지식의 입술들을 배울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어리석은 자라면 어쩌겠는가. 성령 안에서 자아를, 육체를 쳐서 영에 복종하도록,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십자가 사형틀에 매달아 버리는 것이다. 토설하고, 회개하고, 방언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며 영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육체의 정욕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혼이 영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의 전에서 문지기라도 좋사오니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다.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지혜의 입술에 날마다 귀 기울이는 것이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아멘.

  • 지혜로운 자와 부지런한 자의 삶 – 잠언 13장

    잠언 13장은 지혜로운 자가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부지런한 자가 풍족함을 누리며, 입을 지키는 자가 생명을 얻는 지혜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묵상과 교훈을 함께 나눕니다.

    잠언 13
    1 지혜로운 자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오만한 자는 꾸지람을 듣지 않는다. 2 사람은 입의 열매로부터 좋은 것을 먹으나… 3 그의 입을 지키는 자는 그의 목숨을 지키고… 4 부지런한 자들은 원하는 것이 풍족해질 것이다. (직역 성경).

    입의 열매, 입을 지키는 자, 부지런한 자는 좋은 열매를 먹고 자기 목숨을 지키며 원하는 것이 풍족해진다. 곧 지혜로워서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자들이다.

    이들은 겸손하여 훈계를 듣고 회개하여 돌이킬 뿐만 아니라, 조언을 듣고 점점 자신의 입을 지키며 자기의 밭에서 부지런함을 구한다. 부지런하여도 헛된 곳, 남의 밭에서 부지런함은 아무 유익이 없지 않은가. 나의 밭, 내게 허락된 구역, 나의 우물, 나의 여인, 나의 하나님, 나의 신앙.

    그러나 지나간 어제의 시간에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의 삶에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오늘, 지금,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나는 입을 지키며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다. 입을 지키려면 교만함을 벗어야 한다. 거만하면 이미 수치가 들어오니 눈앞에서 어떤 트리거가 당겨질 때에 나의 입은 무조건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래, 지혜로운 아들은 평소에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자신의 거만함을 회개한다. 사단이 생각에 뿌리는 끝도 없는 가라지들을 즉시 쳐낸다. 기준자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즉 의, 평강, 기쁨이다. 이것이 깨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이것을 깨는 모든 생각들은 거짓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가라지이니 뒤도 안 돌아보고 쳐 버리는 것이다. 생각을 지켜 겸손함 가운데 머물기 위함이다.

    첫사랑을 지키며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열매가 주어질 것이다. 그들은 지혜롭다. 사랑하는 예수님, 오늘도 나를 붙들어 주세요. 아멘.

  • 거만과 수치, 그리고 겸손이 주는 지혜 – 잠언 11장

    거만과 수치, 그리고 겸손이 주는 지혜 – 잠언 11장

    잠언 11:2 말씀을 통해 ‘거만함이 수치를 불러오고, 겸손이 지혜를 가져온다’는 영적 원리를 묵상합니다. 가인의 선택과 우리의 일상 속 반응을 연결하며, 수치에서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나눕니다.

    잠언 11:2
    거만함이 들어올 때 수치가 들어오나 겸손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 (직역성경)


    오늘은 수치에 관한 메타인지를 하는 날이다. 수치는 거만할 때 들어온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버럭 할 때조차도 수치가 들어온다. 그러니 내게는 쌓여 있는 수치가 그만치 많은 것이다. 가장의, 어른의 뜻에 따르지 않는 아이에게 분노가 올라올 때, 왜 씩씩거리나. 그 이면에 있는 것이 두려움과 수치이다.

    가인은 자기의 수치를 해결하려고 그의 근원을 제거(살인)하는 쪽을 택하였다. 오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부모를, 권위자를, 자녀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없으니 미워하며 자신을 죽이는 쪽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게 모두 죄의 열매, 즉 선악과의 열매 아닌가. 거만하여 두려움과 수치가 따라오니 다른 사람에게 버럭하며 분을 내는 것이다.

    거만할 때 수치가 들어오지, 혈기를 내야 수치가 오는 것이 아니다. 입을 다물어도, 입술을 지켜도 그 전에 교만하면 수치는 그냥 들어온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할까. 회개해야지. 나의 상처를 계속 내어드려야지. 성령이 만지실 때, 수술하실 때 고통스러워 구르면, 그분은 잠깐 하시고 멈추시는 것 같았다. 그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여기까지만 하시나 보다 할 것인가, 나 괜찮으니 계속 하시라고, 통째로 다 가져가시라고 힘써 그분의 손을 끌어당기겠는가.


    예수님, 도와주세요, 오늘 나의 상한 심령을 다 가져가 주세요. 나를 긍휼히 여겨 주세요. 아멘.

  •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 잠언 9장 묵상과 회개의 고백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 잠언 9장 묵상과 회개의 고백


    잠언 9장의 지혜의 부르심을 따라 변화된 삶의 이야기.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걸어가며 주님의 음성에 응답한 신앙인의 회개와 성화 여정을 나눕니다.


    잠언 9장

    4 단순한 자가 누구냐? 이리로 발길을 돌려라. 그리고 생각이 부족한 자에게 지혜는 말한다. 5 오너라,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포도주를 마시며 6 단순함을 버리고 살며 총명의 길로 걸어가거라. 12 만일 네가 지혜롭다면 너는 너 자신에게 지혜롭지만 네가 오만하다면 네 혼자서 짐을 짊어질 것이다. (직역성경).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단순하고 생각이 부족한 자는 지혜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반응한다. 어떤 이는 니고데모 처럼 순전할 것이고, 또 누구는 사도 바울 처럼 완악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의 부르는 음성을 듣고 응답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가슴에 칼을 품고 있었지만, “기범아 나와 함께 가자”라는, 내면에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그만 무엇에 홀린 듯 “네 주님”하고 대답했었다.

    가문의 무엇이 어떻고, 불의한 권위자가 저쩌고 하는 말들은 안하겠다. 나의 죄는 내가 짓는 것이다. 중독에 잡혀 음란에 빠졌던, 습관적인 죄가 있던, 조상으로부터 대물림되었건, 상관 없다. 나의 모든 죄는 저 사람 때문에가 아니다. 다 내가 지은 것이다. 내가.

    오늘 내게 주어지는 말씀은 어쩌면 성화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아빠를 죽이려던 마음이, 한 순간에 그분의 구원을 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의 생명과 그분의 생명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상처는 별개의 문제이더라.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이다.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걸어가기 위해 여전히 몸부림 치며 오늘을 주님께 맡긴다.

    주님, 오늘도 나의 손 붙들고 나와 함께 가세요. 오늘 다시 나를 주님의 멍애에 붙들어주세요. 성령님, 오늘 나를 떠나지 마세요. 내가 성령님을 쫓아내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주님과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릴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 삶의 불확실함 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법

    삶의 불확실함 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법

    삶의 염려와 두려움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의 여정. 가장으로서 책임감 속에서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방법을 나눕니다.

    잠언 8장

    10 은 말고 내 훈계를 취하고 정제된 금보다 지식을 취하여라. 17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할 것이니 나를 애타게 찾는 자들이 나를 발견할 것이다. 21 내 사랑하는 자들에게 있어야 할 것들 유업으로 주어 그들의 창고들을 내가 채울 것이다. (직역성경).

    믿음으로 하나님 인도 신뢰하기

    가끔은 내가 지원하지도 않은 곳에서 일해달라고 연락이 올 때가 있다. 처음 직업을 구할 때 그랬고 그 이후에도 비슷한 일들이 한두번 일어났다. 사람과의 만남도 그랬다. 뜻하지 않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삶을 이끌어가셨다. 아내도 그렇게 만났다. 전혀 뜻박의 장소에서 뜻박의 방법으로. 그 뿐인가 글파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일행들과 저녁 먹고 잠시 들른 마포의 어느 카페에 김목사님이 거기 계셨고, 유튜브에 잠깐 비친 목사님의 얼굴을 아내가 알아보고 인사를 나눴었지. 이게 다 무언가. 아, 학교도 그랬다. 어떻게 입학해서 어떻게 편입해서, 그 다음 어떻게 진학 하고, 뭐 그랬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에 대한 조금의 염려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는 이유는 무얼까. 내게 그렇게 믿음이 없나. 오늘 주님이 내게 주시는 훈계의 말씀은 믿음에 관한 것 같다. 모처럼 나의 어떤 자녀가 신나게 지도를 그렸다. 여지껏 치우면서 마음 한켠에, 앞에 놓인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한 분주함이 몰려온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잠시 일들을 뒤로 하고 말씀 앞에 앉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당신이 사랑하여 그들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유업으로 주고, 창고들을 가득 채우겠다. 이 말씀 앞에서 나는 그저 나의 믿음 없음을 회개할 뿐이다. 여전히 주님께서 나의 삶을 붙들고 이리 저리 인도해 가실 것들 더욱 믿음으로 취하리라. 그분이 나를 어디로, 어느 곳으로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신뢰하면, 사랑하면, 어떤 두려움도 나를 삼키지 못한다. 가장으로서 식구들의 먹을것을 책임 져야 한다는 거짓된 모든 부담감도 다시 내려놓는다. 주님이 책임지신다. 나의 앞에는 오직 예수님과 나만 있을 뿐이다. 오직 예수님과 나만의 관계, 그게 다이다. 사랑하는 예수님, 오늘도 나를 도와주세요. 아멘.

  • 분노하는 이유 – 내면의 깊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분노하는 이유 – 내면의 깊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부모가 어떠하면 그 자녀도 어떠한 법이다. 화를 잘 내는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 역시 그 마음에 분노가 가득 하다. 왜 그럴까. 어릴 때, 내 마음 대로 할 수 없는 그 때에 끝도 없이 화내는 부모님 밑에서 얼마나 두려웠나. 그러나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는 절대 안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첫 걸음이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네 총명으로 그런 생각을 그만두어라. 12 네 마음을 훈계에 가져가고 네 귀를 지식의 말들에 가져가거라. 19 들어라, 내 아들아. 그래서 지혜로워라. 네 마음을 그 길로 인도하여라. 18 반드시 미래가 있으니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잠언 23:4, 직역성경).

    분노와 두려움

    나의 마음을 부에 가져가지 말고 훈계에, 나의 귀를 지식의 말들에 가져가서, 아빠의 말씀들을 듣고 나의 마음을 그 길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

    그럼 어떻게 듣는가, 말씀을 통해서, 예배 가운데, 꿈과 상황들… 왜 나의 오른쪽 눈에 상처가 났는가. 오늘 새벽의 그 이상한 꿈의 의미는 무엇인가. 분노라는 영이 이런 식으로 나를 덥는구나.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부를 선택하여 끝 없이 쫓아간다. 상황들이 뜻 대로 통제되지 않을 때 두려움에 휩싸이면 조선시대 도령 같이 생긴 혈기의 영체가 와서 뒤에서부터 나의 눈과 생각을 강제로 잡아 옷처럼 등줄기를 타고 흐려며 감싸 입혀진다. 그것이 혈기요 분노인 것 같다. 남자가 가끔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어찌 보면 어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잡혀 움츠려숨는 것 아닐까. 마치 어딘지 모르는 캄캄한 산속을 헤메이는 어떤 한 사람 처럼 말이다. 그러다 동굴을 발견하면 거기에 들어가 숨는 것이다. 도령의 영이 와서 그를 잡을 때 까지.

    험한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결국 부를 선택하게 되어있다. 그것이 세상 사탄의 경제 시스템이거든.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그것을 이루려 애쓰지 마라. 그만 하라. 그리고 아빠의 말씀, 훈계의 말씀들에 너의 마음과 귀를 가져가서 듣고 네 마음을 돌이켜 그 길로 인도하라. 내가 너의 삶을, 미래를 설계하였다. 그래, 반드시 네 미래가 있다. 사막의 셀 수 없는 모레알보다 너에 대한 나의 계획이 이렇게 많다.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들아, 나를 신뢰하여 나의 말씀을 듣고 나의 길로 너의 마음을 돌이키거라. 부가 아니라 나, 곧 너 기범이의 아빠가 기범이 너를 평강으로 인도한다. 나의 아들아, 내 손을 잡고 나를 신뢰하렴.

    예수님 감사합니다. 아멘.

  • 화내는 사람 특징 –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남 탓

    화내는 사람 특징 –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남 탓

    잠언 13:10 거만은 싸움만 일으키나 조언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 (직역성경).

    누가 조언을 구하는가, 바로 들을 귀 있는 자들, 지혜로운 자들이다. 조언을 구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말에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겠다는 뜻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것이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귀에 들려진 것이 말인 것 처럼, 지혜자들의 조언이 내 귀에 들려지고, 나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어야 그가 정말로 조언을 구한 것이다. 듣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 삶에, 행동에, 생각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남 탓 하는 사람
    chatgpt image 2025년 5월 15일 오후 07 32 08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네가 그렇게 하니 내가 화가 난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린 자녀들 때문에 힘들다. 다 무언가. 남탓, 변명, 자기 박스에 갇혀 있다. 폭이 좁다. 내가 그들보다 높은가. 그러니 자기 아래 사람들에게 화가 나지. 내 뜻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안 움직여지니 불이 올라오지. 그러나, 이것도 다 괜찬아. 다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성품의 사람들이 있나. 그들 입장에서는 나를 답답하게 여긴다. 

    직장에서 경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막 뭐라 할 때가 있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그러는지. 성격 급한 것들이. 어쩌겠나, 넉살로 받아쳐야지. 그러면 어찌 못 한다. 그러나 나 또한 나보다 세상을 적게 살은 아이들에게 막 뭐라 했었지. 참 회개가 많이 나오는 거시기 같은 상황이다. 첫쩨와 막내가 넉살 부리는 것이 꼭 나인가보다. 

    나는 조언을 구하는 자인가.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일터에 충만한 화남과 분냄이 많이 사그러들었다. 날마다 천국을 선포하면서 출근 하는데, 점점 되어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일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의, 평강, 기쁨 더욱 가득 풀어질지어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