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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로운 자의 말은 깊은 물, 솟아나는 강이다 – 잠언 18장

    잠언 18장 4절 말씀을 묵상하며 지혜로운 사람의 말이 어떻게 깊은 물과 솟아나는 강처럼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지 살펴봅니다. 참된 사랑과 성령 충만의 언어를 배웁니다.

    잠언 18
    4 지혜로운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이고 솟아나오는 강이며 지혜의 근원이다. (직역성경)

    성령님으로 내면에 충만한 사람, 그의 입에서는 깊은 물, 솟아나는 강 같은 말들이 나온다. 이웃을 살리고 자신을 살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지혜의 근원이 나올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일 것이다.

    단순히 귀에 달콤한 말들이 아니다. 죄와 수치는 덮어두고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니 하면서 단지 감정만을 위로하는 말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웃의 죄를 지적하여 찌르고 정죄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 둘 다 사탄이다.

    사랑은 억지로 잡아끄는 것이 아니다. 무력으로 강요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노예일 뿐, 사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랑은 이웃의 눈의 티를 보기 전에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본다. 결코 이웃을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의 입이 내는 말들은 사랑으로 시작하는 말들일 것이다. 예수님처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너희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며, 주린 자들은 배부를 것이며, 우는 자들은 웃을 것이다. 나로 인해 고난 받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상급이 크다. 그러나 부유하고 배부른 자들, 세상에서 높임받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다.”

    지혜로운 자의 입은 죄인의 마음을 돌이켜 구원받는 회개의 자리로 인도한다. 그 뒤에는 이웃을 위한 끝없는 기도와 섬김이 있을 것이다.

  • 이웃을 대하는 태도와 명철한 자의 삶 – 잠언 11장

    잠언 11장 12-14절 말씀을 통해 이웃을 멸시하거나 험담하는 삶이 아닌, 명철하고 신실한 삶의 길을 묵상합니다. 성경 66권을 자문관 삼아 살아가는 지혜와 자녀 교육의 교훈까지 함께 나눕니다.

    잠언 11
    12-14 그의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생각이 부족한 자나 명철한 사람은 가만히 있다. 험담하고 다니는 자는 비밀을 드러내나 영이 신실한 자는 일을 숨긴다. 전략이 없으면 백성이 쓰러지니 승리는 많은 자문관으로 인해 생긴다. (직역성경).

    이웃을 멸시하는 자, 험담하고 다니는 자, 자녀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일반적인 혈기 많은 부모의 모습이다.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군대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난다. 나는 이런 부류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나도 어느 때에는 이웃을 멸시하고 험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을 받아 명철하여 영이 신실한 자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 이웃의 험담거리를 숨기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럼 전략이 오는 많은 자문관들은 누구인가. 멀리 볼 것 없다. 바로 성경이다. 성경 66권, 모세로부터 사도 요한의 글들까지, 이 모든 저자들이 곧 나의 자문관들이다.

    무개념, 노개념의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하나하나 가르치는 생활 규범들, 성도로서 살아가는 방법과 이유들, 왜 서로 사랑하는지 등등의 수많은 가르침들이 아이들 뒤를 따라가나, 나는, “우와, 이런 것도 가르쳐야 돼? 우와, 이것도 알려줘야 하는 거야? 우와, 당연한 것 아니야?” 하고 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아이들에게는 전혀 생소하며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경우도 참 많지 않은가. 아이들과 다니다 보면 정말이지 당혹스러운 노개념에 아연실색하며 실소를 머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런 것들을 인식이나 하며 세상을 사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몸이 그냥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다. 마치 운전할 때처럼 그렇게 가는 것이다. 운전할 때 별의별 희한한 사건들을 다 만나지 않는가. 정말 골 때리는 현장이다.

    그러니 그때그때, 날마다, 오늘 내게 필요한 자문관들을 찾아 그들의 글을 읽고 기도하며 그대로 행하려고 날마다 연습하는 것이다. 한 권 한 권씩 정독하며 저자의 신앙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 열정, 순종하는 모습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운전 연습할 때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하루하루가 나의 삶을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오늘로 만들어간다. 생각이 부족한 내가 명철한 사람이 되어가며 이웃의 비밀을 드러내던 입이 점차 다물어지는 것이다. 나의 입이 멸시하며 험담하는 말들을 잊을 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멘.

  • 지혜와 예배로 하루를 채우는 삶 – 잠언 8장

    잠언 8장을 통해 주님의 지혜와 예배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삶의 무게 속에서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법을 배워 보세요.

    잠언 8
    내 입의 모든 말은 의롭고 그것들 안에는 비뚤어짐이나 굽어짐이 없으니 깨달은 자에게는 그것들 모두가 정직하며 지식을 발견한 자들에게는 바르다. 은 말고 내 훈계를 취하고, 정제된 금보다 지식을 취하여라. (직역성경).

    주님의 지혜는 그것을 깨달은 자에게만 꿀 같고 진주 같은 것이다. 그분의 지혜를 듣는 자는 먼저 그분의 훈계를 듣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속도가 빠르다. 오늘 아침,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나를 누르려고 한다. 이때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그 무게의 감정을 내가 받아들이려 하는 자신을 보면 회개하고, 동시에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니 주님 손에 던져버린다. 나의 감정을 주님께 다 쏟아 드린다.

    예배는 매주 몇 번 교회 가서 드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매일, 시간마다, 순간순간 주님을 경험하며 양처럼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양들이라면 모두가 다 그렇게 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은금보다도 지금 이 시간에 주님을 만나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 이처럼 나의 하루를 온전히 예배로 채우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나의 친밀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땅, 즉 내 안에 이루어지도록, 그래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모든 시험에서 주님이 지켜주시도록, 그분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잘 따라가는 것이다. 오늘 일용할 양식은 내 알 바 아니다. 그것은 목자가 주시는 것이다. 나는 그저 오늘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그것 한 가지를 붙들고 순종하면 그만이다. 입을 닫는 것이다. 교만하여 패역한 입(이것을 지혜가 미워한다)을 닫는 것이다. 내 입이 언어를 잃어버릴 때까지 입을 닫는 것이다. 모세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다.

    외국에 사는 나의 가족을 보니 한국말도 어눌하고,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뭐 참 애매하다. 전에 보니 우리 교회 태필린도 잘 못 따라 읽더라. 나의 입도 그렇게 닫혀질 수 있을까. 혀가 어눌하여 패역한 말 자체가 잘 안 나올 때까지 입을 닫을 수 있을까.

  • 잠언 4장 23절 묵상: 마음을 지키는 첫 시간, 해가 진 직후의 기도

    “잠언 4장 23절을 묵상하며, 세상에 빼앗긴 마음을 어떻게 지킬지 나눕니다. 하루의 첫 시간, 해가 진 직후를 주님께 드리는 기도의 의미를 다룹니다.”

    잠언 4
    23 지켜야 할 어떤 것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이는 그것으로부터 생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직역 성경).

    나도 습관적인 죄에 빠지는 부분이 있다. 아직도 세상을 좋아하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바로 영화다. 영화 보고 싶다. 뭐 많지 않은가? F1, 미션 어쩌구, 호빗, 반지 등등.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들 너무 길어 볼 시간이 없으니 10분짜리 클립이라도 찾아보려는 것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생각을 빼앗기면 그렇게 된다. 또 있다. 요즘 세상이 버라이어티하게 돌아가니, 미국 어쩌구, 리짜이밍이 저쩌구, 중국이 어쩌구 등등. 참, 이스라엘이 후티 지도부를 박살냈더라. 부정 선거가 그렇고…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되는데 등등.

    그러나 그런 것 전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하루의 가장 첫 시간을 무엇에 사용해야 하는가? 해가 진 직후부터가 하루의 첫 시간이다. 지극히 성경적이다. ― 태초에 하늘들과 땅만 있을 그때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 이 땅은 암흑과 혼돈 속에서 시작되었다. ― 해가 진 직후는 대략 18:30~19:00 정도가 되겠다. 이걸 이슬람도 그대로 따라한다. 보라, 정말 기도하시는 분들은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기도하신다. 어떤 분들은 밤에 숙면을 취한 후 다시 새벽 3시, 5시부터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신다. 자기 방에 예수님 앉을 의자를 항상 마련한다. 예수님 오시면 거기에 앉으시라고, 나와 함께 이야기하자고.

    그 밤을 주님께 드리기가 나는 그렇게 어렵다. 생각을 빼앗긴다. 세상에 관심이 많아서이다. 아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정한다. 하루의 가장 처음 시간, 그 저녁에 그렇게 생각을 못 지킨다. 언젠가 주께서 내게 요청하셨다. “밤을 내게 주렴.” 내 주님, 그런데 잘 안되네요. 다시 회개하고 오늘 다시 밤을 주님께 드리려고 한다. 오늘만 하려고 한다. 내게는 모든 날들이 늘 오늘이지 않는가. 지금 이 순간도 오늘이다.

    언제 내 마음을 지키나? 바로 오늘이다. 그중에서도 오늘의 가장 첫 시간, 해가 진 직후에 지켜야 할 그 어떤 것보다도 내 마음을 지키겠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아멘.

  • 잠언 3장: 지혜의 길, 고통을 통한 평안과 부귀의 비밀

    잠언 3장은 지혜의 길이 은혜와 평안을 주며, 고통 속에서 평안을 배우는 비밀을 보여줍니다. 다윗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참된 승리와 평안을 알아보세요.

    잠언 3
    16-18 날들의 길이가 그녀의 오른손에 있고 부귀와 영광이 그녀의 왼손에 있다. 그녀의 길들은 은혜의 길들이고 그녀의 모든 통로는 평안이다. 그녀는 그녀를 붙잡는 자들에게 생명나무니 그녀를 잡는 모든 자는 행복하다고 불릴 것이다. (직역성경).

    평안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최악의 평안을 누리느니 막강한 전투력을 키워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예수님은 결코 연약하신 분이 아니다. 다윗 왕국의 평안도 결국은 그의 손에 묻은 수많은 피의 대가였다. 테러를 제압하는 군인들은 최소한 그 칼에 맞는 것과 비슷한 고통 정도는 느껴봐야 한다고 하더라. 다윗은 사자와 싸우며 그러한 고통을 미리 경험하였고 골리앗 앞에서 결코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이 모형 칼이라도 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고통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부름받은 군사라면, 전쟁에 능한 용사로 부름받았다면, 주먹에 맞을 때, 화살에 관통당할 때, 전쟁 상황에서의 두려움, 목숨의 위협 등등의 고통을 모의 상황에서 미리 느껴보는 것이다. 고통을 아는 자가 더 잘 대처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쟁에 능한 용사가 되는 것이다.

    지혜의 길들은 은혜의 길들이고 그녀의 모든 통로는 평안이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지혜는 십자가였다. 그렇게 사랑하시던 예루살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을 맛보며 죽으심으로 대신 갚으신 것이다. 그러니 그분은 전쟁에 능한, 항상 승리하시는 왕 중의 왕이 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지혜를 따라, 그녀의 가장 큰 지혜를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상처받은 치유자로 일어서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자본주의 바탕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 통로가 막힐 때도 나는 평강을 누릴 수 있겠는가. 대적이 나의 정신을 무너뜨리려 할 때, 나는 누구를 의지하여 일어나겠는가. 요셉처럼, 노예로 끌려갈 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힐 때에도 여호와 앞에서 신실하겠는가. 여호와 앞에서 좁은 길을 가려 하는 자 앞에 왜 자꾸 불편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가문에 흐르는 저주인가.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 모두가 어쩌면 고통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일 것이다. 돈을 움켜쥐고 믿는 자들의 마음을 훔치려는 대적의 모든 공작에 당당히 맞서 싸우라는 선물이다.

    삶이 끊어질 것 같은, 목숨이 나갈 것 같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맛본 사람들은 결코 탐욕에 잡히지 않는다. 다시 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선물은 평강이며 보상은 부귀와 영광이다. 아멘.

  • 잠언 30장의 지혜: 매일 필요한 빵과 감사의 삶

    잠언 30장 말씀을 통해 매일 필요한 양식, 감사의 태도, 풍족함 속에서 잊기 쉬운 진정한 만족을 묵상합니다.

    잠언 30
    7-8 두 가지 일을 제가 당신께 요청하니 제가 죽기 전에 제게서 막지 마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게 하시고 빈곤과 부를 제게 주지 마시며 매일 필요한 빵을 저로 먹게 하십시오. (직역성경).

    한 달 먹을 음식이 냉장고에 있다 하여도, 오늘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 오히려 요즘처럼 풍족한 시대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입에 안 맞아서 그게 더 문제인 경우가 많다. 어떤 아이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치면서, 옆에 밥이 있는데도 싱겁다고 안 먹고 있다. 옆에 있는 다른 아이는 똑같은 그 밥을 맛있게 먹고 간식까지 다 먹고는 행복하게 잔다. 나는 입맛이 무뎌서 그런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웬만하면 나는 다 맛있게 먹거든.

    주께서 오늘 필요한 빵을 안 주셨는가. 아니면 만나 말고 고기 하는 건가.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을 오늘 다 갖추어야 하는 건가. 오늘 정직하면 되는 것이다. 빈곤하지도 않고 차고 넘치도록 풍족하지도 않아서 주님을 모른다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 필요한 양식으로 감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매일 필요한 빵이 단지 먹는 것인가. 아니다, 오늘 필요한 모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 주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오늘 주님을 사랑하되 처음 주님을 사랑할 때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다. 고기 아니면 어때, 조금 싱거우면 어때, 배고프면 다 맛있다. 입에 안 맞는 게 아니라 풍족해서 그런 것이다. 아침에 눈만 뜨면 그냥 만나가 지천에 깔려 있으니 그런 거다.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니 감사가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자는 곳이 당연한 건가. 아니다. 내 목숨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숨 쉬는 공기마저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이 모든 것을 날마다 선물로 받는 것이다. 마치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처럼. 주님, 내게도 매일 필요한 빵을 먹게 하십시오. 아멘.

  • 잠언 27장 묵상: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오늘에 충실하라

    잠언 27장의 교훈은 내일을 자랑하지 말고 오늘 주님 앞에서 겸손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기 자랑과 교만의 위험, 참된 자존감과 겸손의 차이를 묵상해봅니다.

    잠언 27
    1-3 내일을 자랑하지 마라. 참으로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 하지 마라. 이방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 하지 마라. (직역성경).

    내일을 자랑하는 자는 헛된 꿈을 자랑하는 것과 똑같다. 내일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오늘, 내일도 오늘, 그다음 내일도 오늘, 하루가 지나 내일이 오면, 그때도 오늘, 오직 오늘뿐이다. 그러니 오늘 주님 앞에서 겸손하려고 힘써 싸운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것은 자존감이 높은 것과는 다르다. 자존감이 높은 자는 거울 앞에서 행복하다. 누가 “너 참 멋있다”라고 말해주면, “너 그거 이제 알았니?” 할 것이다. 단체사진을 찍어도 멋있는 나를 먼저 찾겠지. 그러나 오늘 말씀이 말하는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자는 자기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들을 자랑하고 스스로 대견해하며 칭찬한다. 교만한 것이다. 선한 자는 자신에게 만족하고, 악인은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가.

    마음의 동기가 무엇인가? 교만함인가, 겸손함인가. 교만하면 자신이 하는 일로 “나 이런 사람이야” 하며 으스대고 뻐긴다. 아니면 끊임없이 비교하겠지. 그러나 겸손하면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오직 유일한 나, 예수님짜리,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 즉 나 자신을 보고 만족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거울 앞에 서면 남자는 “나 잘났어” 하고, 여자는 “어머, 여기 코가 왜 이래?” 한다고? 아니다. 그 사람이 그런 것뿐이다. “천상 여자”가 있는 반면, “무늬만 여자”인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남자의 성격이 얼마나 섞였는지에 따라 여자는 천차만별이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주님이 어떻게 만드셨건 상관없이 마음의 동기는 속일 수 없다. 예수님, 내 마음의 동기가 주님 앞에서 항상 진실하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 잠언 26장 묵상: 교만과 어리석음, 그리고 말씀 앞에서의 깨달음

    잠언 26장은 교만과 어리석음의 위험을 경고하며,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자의 끝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통해 교만의 견고한 진을 허물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길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

    잠언 26
    12 너는 자기 눈에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을 보았느냐? 그보다는 어리석은 자에게 희망이 있다. 16 게으른 자는 판단력 있는 충고자 일곱 명보다 자신을 더 지혜롭게 여긴다. (직역성경).

    잠언 26장은 온갖 악의 모음집처럼 읽혀진다. 소식과 잠언을 어리석은 자에게 두는 것 자체가 죄악일 수 있다. 그는 우둔하여 온갖 죄악을 짓고 다니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많은 악이 어리석은 자의 입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럼에도 이 모든 악을 무색하게 하는 단 하나의 성경 말씀이 있다면 12절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 즉 모든 지혜자들보다 자신을 더욱 지혜롭게 여기는 자이니 곧 교만하여 누구의 말도, 어떤 조언과 책망도 듣지 않는 자이다.

    사람이 교만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인생의 막대기로 인해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왜 교만함을 좋아할까. 아기들과 함께 있다 보면 깜짝 놀라고 당황스러울 때가 참 많다. 무개념, 노개념이 참 무섭다. 그것은 정말 거시기하다. 저러다가 위험할 수도 있겠다 하는 순간들이 이따금씩 발생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일일이 하나하나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이미 탑재되어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 모든 규칙들이 어쩌면 말씀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견고한 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무너져 내린 나의 사고의 틀만 봐도 참 많지 않은가. 처음에 나는 이렇게, 이러한 가치관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자녀를 양육하리라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리지 않았는가. 내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배웠던 소위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방법들과 규범들은 어찌 보면 시대의 변화에 맞게 재구성되거나 폐기되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것의 견고한 진으로 자녀들을 누르고 있게 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 그러다가 시대의 장벽 앞에서 어느 순간 박살이 나면, 참 마음이 어려운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지. 이러한 견고한 진들이 모이고 모여,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게 되고 그것이 곧 교만이라는 높은 바벨탑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 결국 내 앞에는 주님의 말씀만 남는다. 저 교만한 자를 정의하는 오늘의 말씀 앞에서, 나는 저기에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라도 해당되지 않는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보다 스스로를 더욱 지혜롭게 여기는 부분이 있는가. 말씀을 대적하여 일어선 아직 깨닫지 못한 견고한 진이 있는가, 그것이다.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주님 아니면 안 됩니다. 아멘.

  • 잠언 25: 지혜의 꿀처럼 조금씩 깨닫는 삶의 교훈

    잠언 25장을 통해 배우는 지혜와 삶의 교훈. 꿀처럼 달콤하지만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는 지혜, 원수에게 선을 행하는 의미, 잠언 묵상의 중요성을 풀어봅니다.

    잠언 25
    16 꿀을 네가 발견했으면, 필요한 만큼만 먹어서 네가 그것으로 배를 불려 토해내지 않게 하여라. 21 너를 미워하는 자가 굶주리면, 그에게 빵을 먹이고 그가 목마르면, 그에게 물을 마시게 하여라. (직역성경)

    맛있는 꿀 한 통을 다 먹는 방법은, 조금씩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다. 지혜의 말씀도 이와 같아서 한 번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주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것도 하나, 딱 하나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어느 하나에 몰입하도록 만드셨다. 결코 멀티가 아니다.

    어느 날 잠언 묵상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평생의 좋은 습관으로 만들기에 이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주님의 모든 말씀이 다 그렇지만, 특히 잠언은 파도 파도 끝없이 솟아 흐르는 샘물 같다. 내가 잠언에서 취하고 있는 부분은 아직도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직 접근도 할 수 없는 말씀들이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하나하나 깨달아 갈 때마다 그렇게 내 영혼에 달고 귀한지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평생 먹어도 다 먹을 수 없는 꿀 한 통이 있다면, 지혜 중의 지혜, 성경 중에서도 바로 잠언의 말씀이라 생각한다.

    나는 21절의 말씀이 늘 어렵다. 원수에게 선을 행하는데, 이것이 원수의 머리에 숫불을 쌓는 것이란다. 여호와께서 보답하신단다. 이 원수가 사탄도 아니고, 나의 가족이고 친구일진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어려웠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상대의 머리에 숫불을 쌓는 것은 곧 그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이라 하더라. 그래서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게 된단다. 그렇게 되려면 도대체 원수에게 얼마나 선을 행해야 하나? 그러나 나는 원수가 없다.

    요셉에게는 형들, 다윗에게는 사울, 예수님께는 유다? 아니야, 예수님은 그를 끝까지 “친구여” 하셨다. 내게는 그만한 원수가 없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더 이상 그들은 나의 원수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다른 원수감들이 내 앞에 나타나게 될까? 아하! 나를 미워하는 할머니가 딱 한 사람 있기는 하다. 불쌍한 여인이 있다. 생각해보니 그 할머니에게 선을 행해 본 적은 없네. 피하려고만 하였지. 근데 그 할머니 잘 먹고 잘 산다. 굳이 선을 행해야 하나? 고민 좀 해봐야겠다. 예수님, 어떻게 하죠? 도와주실래요? 아멘.

  • 잠언 24장: 지혜로 집을 짓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

    잠언 24장 말씀을 통해 지혜가 우리의 삶과 집, 그리고 미래를 세워가는 과정을 묵상합니다. 생업과 준비,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삶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잠언 24
    14 지혜가 네 영혼에 그와 같은 줄 알아라. 만일 네가 그것을 발견하면 미래가 있고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직역성경)

    지혜로 인해 집이 지어진다. 태초에 온 땅과 하늘들의 기초를 놓은 분도 지혜, 그분이셨다. 그는 마치 장인과 같았다. 그 지혜로 인해 나의 미래, 희망이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밖에서 일을 준비하고 땅에서 내게 맞도록 한 다음에 나의 집을 짓는 것이다. 곧 생업을 준비하는 시간들이 어쩌면 지혜를 발견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나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 아닌가. 지혜는 나를 결코 무너지지 않을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 가신다. 그러므로 지금은 나의 집을 짓기 전에 바깥일을 준비하고 밭일을 정리하는 때인 것이다. 놀고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땅에서 살려면 반드시 자기의 생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사실 때 일을 하셨다. 생업을 하면서 지혜를 배워 간다. 집 지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분이 나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집으로 만들어 가신다. 여기에 나의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아멘.

  • 잠언 23의 교훈: 부자가 되려는 유혹보다 지혜와 믿음을 선택하라

    잠언 23장은 부자가 되려는 헛된 욕심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를 따를 것을 강조합니다. 좌절 대신 희망을 붙잡고, 가정과 믿음 안에서 참된 소망을 찾는 삶을 나눕니다.

    잠언 23장
    4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네 총명으로 그런 생각을 그만두어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들을 질투하지 말고 오직 온종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질투하여라. 18 반드시 미래가 있으니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들어라, 내 아들아. 그래서 지혜로워라. (직역 성경)

    듣는 자가 지혜롭다. 일단 들어야 할 것 아닌가. 길가, 돌짝밭이라도 일단 들어야 할 것 아닌가.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도 결국은 그 바위를 깨뜨리기도 한다. 자기 능력이 아니다. 가을의 이슬이 얼어 그 힘으로 돌을 깨는 것이다. 지금 당장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말자. 옥토밭이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 나의 상태가 옥토밭이 아니라면 어쩌겠는가. 그래도 심어야 할 것 아닌가. 일단 심어야 뭐가 되든 되지 않겠는가. 혹시 아는가. 갈라진 틈 사이로 물이 스미고, 추운 겨울을 겪으며 그것이 얼어 바위를 깨뜨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부자가 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조금 더 편안함을 위해 조금 더 많이 벌어보려는 유혹을 버리고 오히려 그 시간에 지혜를 듣자. 가족과 자녀들과 성도들과 시간을 조금 더 함께 보내자. 그것이 더 좋다. 속사람 치유받을 때, 나의 부모에게 그렇게 말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하는 것 같다. 나만 그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질투하여 그들처럼 주님께 다 드리는 것이다. 가정도, 재정도, 미래도, 현실도 다 드리면 내가 붙잡을 게 없다. 가장의 책임감과 그 압박감도 다 사라진다. 가정에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무능해 보이는 자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어쩌겠는가. 다 서로 감내하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그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반드시 미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네 희망이 끊어지지 않는다. 길바닥에 나앉을 것 같아도 괜찮다. 절대 그렇게 안 될 거니까. 일을 할 수 없어서 백수여도 괜찮아. 염려하지 마. 절대로 안 굶고, 자식들 안 굶길 거니까. 주님이 도우신다. 그분이 이끌어 가신다. 업어 인도하신다. 일단 주님 손에 다 맡겨 보라. 그럼 알게 된다. 경험하게 되어 있다.

    나의 청소년 아이도 이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고 입히시는지 옆에서 다 봤으니까.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키워 간다. 어떤 사춘기 아이는 자기 동생에게 그런다. “필요한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주님께 다니엘처럼 구해 봐. 다 주셔.” 그 아이의 간증 아닌가. 그 아이는 먹고 싶은 음식들이 따라다닌다. 그냥 잠깐 기도했을 뿐인데, 어디에 가든 자기 원하는 음식이 거기 있다고 그런다. 밤에 너무 더워 못 견디겠으면 꿈속에 목사님께서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주실 때도 있다. 또 어떤 아이는 늘 우산이 따라다녀. 그 아이와 함께 다니면 비 맞을 일 없다.

    주께서 내게 허락하신 나의 미래가 있다. 내 주님이 영원하신데 어찌 나의 희망이 끊어지겠는가. 예수, 나의 참 소망. 아멘.

  • 지혜와 온유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 잠언 19장

    잠언 19을 묵상하며 지혜로운 삶과 온유한 마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방법을 나눕니다. 화를 참고, 명철과 훈계를 통해 삶에서 복을 발견하는 실제적인 깨달음.


    잠언 19장
    8 지혜로운 마음을 얻은 자는 그의 목숨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발견한다. 11 분별력 있는 사람은 화를 오래 참으니, 그의 영광은 범죄를 간과하는 것이다. 20 네 마지막이 지혜롭게 되기 위하여 조언을 듣고 훈계를 받아라. (직역 성경)

    지혜로우면 막 살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안 산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무엇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지 생각하고 스스로 삼가며 자신의 입과 행동을 절제한다. 복을 얻으려고 명철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선물을 바라고 부모 앞에서 잘하는 아들은 아직 아이인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늘 장난감이 문제 아닌가. 그것이 없는 곳에서는 어찌 그리 서로 행복하게 잘 노는가. 그러나 장난감이 있으면 그걸로 싸운다. 아이들은 또 다른 장난감 선물을 바라고 부모 앞에서 잘하려고 무지 노력한다. 그러나…

    장성하면 그런 것은 쳐다도 안 본다. 주님이 주는 선물보다도, 그분 자체가 좋은 것이다. 그냥 아빠가 좋은 것이다. 그분 앞에 자꾸 나의 얼굴을 보이고 싶을 뿐이다. 주님을 만나고, 사춘기가 지나가면, 그 아들은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한다. 문제는 부모, 즉 불의한 권위자이다.

    그러니 나도 나의 마지막을 주님 앞에서 더욱 지혜롭게 하기 위해, 오늘 지혜와 훈계를 받으려 하는 것이다. 화를 오래 참아 범죄를 간과하는 자가 되려 하는 것이다. 혈기와 분노로 충만한 나의 가문에서 모든 죄악의 통로들을 닫고, 온유한 자로서의 주님의 부르심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 나아갈 뿐이다. 모세를 넘어, 예수님처럼 온유한 자,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다.

    “기범아,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

    그 부르심은 열방에 나가 선교사가 되라는 부르심이 아니었다. 그래, 그렇다. 만점아빠, 온유한 자로 서라는 주님의 초청이었다. 그러니 예수님, 도와주세요.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을 이루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 여호와 의지와 부자의 의미 – 오늘을 사는 지혜 – 잠언 18장

    잠언 18을 통해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과 부자의 의미를 성경적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오늘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배우세요.

    잠언 18장

    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이 그 안에서 달리니 안전하다.
    1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읍이니, 그의 망상 안에는 높은 성벽 같은 것이 있다.
    15 깨달은 자의 마음은 지식을 사고, 지혜자들의 귀는 지식을 찾는다.
    (직역 성경)

    누가 견고한 망대를 의지할까? 의인은 여호와를, 부자는 재물을 의지한다.
    나의 견고한 성읍은 여호와일까, 재물일까? 나는 부자인가?
    집이 있고 냉장고에 먹을 음식이 있으면 부자라고 하셨다.
    나는 차도 있으니 상위 1% 부자다.
    권위자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것이고, 말씀이 그렇게 말하면 말씀에 맞는 것이다. 현실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부자인 이유는 여호와께서 지극히 큰 나의 상급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1년 치 생활비를 한 번에 다 주시면, 나는 매년 한 번씩만 기도할 것이다. 사람이니까. 살 만하니까.
    나의 자녀들이 1년에 한 번만 나를 보러 온다면, 나의 마음은 매우 슬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나 보다. 매일 자녀의 얼굴을 보시려고 말이다.
    어디서 들은 말이지만,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기숙사에서, 어디에서, 집 나가 있던 아이들이 요즘 집에 다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밤을 새우고 늦게 자던, 다음 날 겨울잠 자고 방에서 나오든 상관없다.
    그냥 행복할 뿐이다. 날마다 아이들 얼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다.
    어젯밤에 큰아이가 설탕과 올리고당을 잔뜩 넣어 딸기 스무디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거의 다 먹었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를 의지하려고 한다.
    오늘도, 또 미래의 오늘도, 또 저 멀리 있는 미래의 오늘도, 여호와만을 의지하고 싶다.
    그분 안에서 놀면 안전하다. 미래가 있다.
    반드시 나의 소망이 있으니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이 내게 주어질 것이다.

    그렇게 오늘을 살기 위하여, 나의 마음을, 나의 귀를 지식의 말씀에 기울인다.
    말씀과 기도로, 회개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아멘.

  • 사랑을 구하는 자와 입을 닫는 지혜 – 잠언 17:9 묵상

    잠언 17:9을 통해 배우는 관계의 지혜. 사랑을 구하는 자는 범죄를 덮고, 말이 줄어들수록 가족과 더 가까워지는 신앙적 통찰을 나눕니다.

    잠언 17:9 He that covereth a transgression seeketh love; but he that repeateth a matter separateth very friends. (KJV).

    사랑을 구하는 사람의 태도

    상대의 사랑을 구하게 되면 그의 범죄함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신부의 사랑을 구하는 신랑 역시 그럴 것이다. 뭐 결혼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면서 성숙하게 되면 입을 닫게 되어 있다. 왜냐면, 하나님 앞에서 토설하며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상대방도, 자녀들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품어지는 것이다.

    반복되는 말이 만드는 거리감

    그러나 어떤 사람은 상대의 죄를 계속 되풀이하여 말한다. 니가 그랬지. 과거에 그랬어. 아직도 그러니. 어찌 보면 어린 자녀들 앞에서 나의 모습 같아 부끄럽다. 그러나 나의 입이 바뀔수록, 나의 입이 닫아질수록 자녀들은 그의 아빠에게 이전보다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지르고 보는 경우가 아직 많다. 그러나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주변에서 그런다. 나의 말이 아니다.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길

    내 하늘 아빠가 그러하듯 나도 자녀들에게 사랑을 구한다. 그냥 식구들이 한 집에 다 모여 있으면 행복하다. 그들의 얼굴만 볼 수 있어도 그냥 좋은 것이다. 나의 입이 더욱 닫혀질수록, 그들은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오늘, 주님 앞에 더욱 머물 수 있도록 붙들어 주세요. 아멘.

  •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 항상 잔치하는 삶 – 잠언 15장

    잠언 15장을 묵상하며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라는 말씀의 의미를 풀어봅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말씀과 함께 분노 대신 기쁨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 항상 잔치 같은 하루를 누리는 비밀을 나눕니다.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이나, 패역한 혀는 영을 상하게 한다. 15 가난한 자의 모든 날은 악하나, 마음이 선한 자의 모든 날은 항상 잔치다. 잠언 15:4,(직역성경)

    오만한 자의 교만을 꺾고 회개하도록 이끄는 혀가 있고, 바른 말이라도 심령을 아프게 하는 혀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나를 살리는 말씀만 하셨다. 내게 “너의 거만과 그 큰 거역을 회개하라” 하실 때에도, 나 스스로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말씀하셨고, 과거 지아비를 향해 칼을 품고 있을 그때에도 전혀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범아, 나와 함께 가자” 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셨다. 그분의 입술은 온유한 혀이다. 그분을 닮고 싶을 뿐이다.

    선한 자의 모든 날은 항상 잔치다. 무슨 말이냐면 항상 기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게서 분노가 올라온다면 그 날은 악하다는 것이고, 곧 나는 가난한 자인 것이다.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던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유하다”라고 말씀하셨다. 환경이 어떻든, 재정이 어렵든 상관없다. 알파와 오메가요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실상은 네가 부요하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부유한 자인거다. 정말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면 날마다 기뻐야 하고, 기쁠 수밖에 없고, 고난 가운데 궁핍하다 하여도 부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야말로 전부, 나의 전부 아니신가. 그것이 사실이고 진리다. 그러니 나의 모든 날들은 항상 잔치다.

    며칠 전에 일 때문에 전에 살던 고향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가 40년 살던 집을 보고 참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그 오래되어 낡은 옛날 연립주택. 팔리지도 않는 그 집이 어떻게 눈먼 이단에게 비싸게 팔려서 지금 사는 이곳으로 이사 왔고, 글파를 만났고, 아둘람 같은 이곳에서 자녀 둘을 더 얻지 않았는가. 선하신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신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았으면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 혼자 일해서 6명 대가족을 먹였겠는가. 아니다. 오히려 주님의 도우심과 공급이 얼마나 많았는가.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미래 계획 하나도 세우지 않는데, 그저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주님을 따라가려 할 뿐인데, 뒤돌아보면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이다.

    아내도 내가 찾았는가. 아니, 오히려 나는 삶을 주님께 드렸다. 결혼도 내 삶의 일부 아닌가. 그래서 다 드렸는데, 주님 발걸음 따라가다가 아내도 만난 것이다. 주님께서 내 앞에 데려다 놓으셨는데도 내가 좀 둔해서 그런지 나의 베필감인지도 못알아 보았지. 자녀들도, 학교도, 직장도 다 그렇게 그때그때마다 이끄시고 공급하시는 주님의 손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혈기를 못 이겨 가족들에게 씩씩댔다. 그러니 얼마나 더 회개할 일이 많겠는가. 이제는 나의 삶에서 악한 모든 날들을 다 빼어 버리고, 온전히 잔치날로 채우겠다. 나의 입이 온유한 입술이 되어 갈수록 나의 날들은 더욱 잔칫날에 가까워진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멘.

  • 지혜로운 자와 부지런한 자의 삶 – 잠언 13장

    잠언 13장은 지혜로운 자가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부지런한 자가 풍족함을 누리며, 입을 지키는 자가 생명을 얻는 지혜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묵상과 교훈을 함께 나눕니다.

    잠언 13
    1 지혜로운 자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오만한 자는 꾸지람을 듣지 않는다. 2 사람은 입의 열매로부터 좋은 것을 먹으나… 3 그의 입을 지키는 자는 그의 목숨을 지키고… 4 부지런한 자들은 원하는 것이 풍족해질 것이다. (직역 성경).

    입의 열매, 입을 지키는 자, 부지런한 자는 좋은 열매를 먹고 자기 목숨을 지키며 원하는 것이 풍족해진다. 곧 지혜로워서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자들이다.

    이들은 겸손하여 훈계를 듣고 회개하여 돌이킬 뿐만 아니라, 조언을 듣고 점점 자신의 입을 지키며 자기의 밭에서 부지런함을 구한다. 부지런하여도 헛된 곳, 남의 밭에서 부지런함은 아무 유익이 없지 않은가. 나의 밭, 내게 허락된 구역, 나의 우물, 나의 여인, 나의 하나님, 나의 신앙.

    그러나 지나간 어제의 시간에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의 삶에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오늘, 지금,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나는 입을 지키며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다. 입을 지키려면 교만함을 벗어야 한다. 거만하면 이미 수치가 들어오니 눈앞에서 어떤 트리거가 당겨질 때에 나의 입은 무조건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래, 지혜로운 아들은 평소에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자신의 거만함을 회개한다. 사단이 생각에 뿌리는 끝도 없는 가라지들을 즉시 쳐낸다. 기준자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즉 의, 평강, 기쁨이다. 이것이 깨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이것을 깨는 모든 생각들은 거짓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가라지이니 뒤도 안 돌아보고 쳐 버리는 것이다. 생각을 지켜 겸손함 가운데 머물기 위함이다.

    첫사랑을 지키며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열매가 주어질 것이다. 그들은 지혜롭다. 사랑하는 예수님, 오늘도 나를 붙들어 주세요. 아멘.

  •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 잠언 9장 묵상과 회개의 고백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 잠언 9장 묵상과 회개의 고백


    잠언 9장의 지혜의 부르심을 따라 변화된 삶의 이야기.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걸어가며 주님의 음성에 응답한 신앙인의 회개와 성화 여정을 나눕니다.


    잠언 9장

    4 단순한 자가 누구냐? 이리로 발길을 돌려라. 그리고 생각이 부족한 자에게 지혜는 말한다. 5 오너라,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포도주를 마시며 6 단순함을 버리고 살며 총명의 길로 걸어가거라. 12 만일 네가 지혜롭다면 너는 너 자신에게 지혜롭지만 네가 오만하다면 네 혼자서 짐을 짊어질 것이다. (직역성경).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단순하고 생각이 부족한 자는 지혜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반응한다. 어떤 이는 니고데모 처럼 순전할 것이고, 또 누구는 사도 바울 처럼 완악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의 부르는 음성을 듣고 응답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가슴에 칼을 품고 있었지만, “기범아 나와 함께 가자”라는, 내면에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그만 무엇에 홀린 듯 “네 주님”하고 대답했었다.

    가문의 무엇이 어떻고, 불의한 권위자가 저쩌고 하는 말들은 안하겠다. 나의 죄는 내가 짓는 것이다. 중독에 잡혀 음란에 빠졌던, 습관적인 죄가 있던, 조상으로부터 대물림되었건, 상관 없다. 나의 모든 죄는 저 사람 때문에가 아니다. 다 내가 지은 것이다. 내가.

    오늘 내게 주어지는 말씀은 어쩌면 성화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아빠를 죽이려던 마음이, 한 순간에 그분의 구원을 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의 생명과 그분의 생명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상처는 별개의 문제이더라.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이다. 단순함을 버리고 총명의 길로 걸어가기 위해 여전히 몸부림 치며 오늘을 주님께 맡긴다.

    주님, 오늘도 나의 손 붙들고 나와 함께 가세요. 오늘 다시 나를 주님의 멍애에 붙들어주세요. 성령님, 오늘 나를 떠나지 마세요. 내가 성령님을 쫓아내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주님과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릴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